며칠 전, 참으로 오랜만에 한가위 보름달을 보았다. 어릴 적엔 언제나 누이나 동무들과 뒷산에서 맞이했던 '쟁반 같이 둥근' 수퍼문이었다. 중천에 뜬 달을 보며 달아달아 밝은 달아/이태백이 놀던 달아/저기저기 저 달 속에/계수나무 박혔으니/옥도끼로 찍어 내고 금도끼로 다듬어서/초간삼간 집을 짓고/양친부모 모셔다가/천년만년 살고 지고/천년만년 살고 지고"란 민요가 떠오른 것은 어릴 적 감상과 함께 건축사라는 직업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 속의 초가삼간은 작지 않다

 

흔히 초가삼간하면 부엌과 방 두 칸 또는 방과 대청이 각 한 칸씩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1732년 영조 때 시행한 경남 산청의 단성현 호구 및 주택조사서를 들고 답사하여 비교한 문헌 신영훈 '한국의 살림집'을 보면, 삼간이란 정면에서 보이는 간수를 일컬었다. 즉 방 두 칸에 대청 한간이 되며 툇마루가 있으면 4.5간, 도리 간 즉 측면이 두간이면 6간이 되었다. 부엌이나 창고 등은 간수에서 제외하였다. 전반적으로 1인당 두 평 정도의 주거공간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양친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픈 집은 소박하지만 아주 작은 공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단간 오두막집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다만 한간 초당에 전통 걸고 책상 놓고/나 앉고 임 앉으니 거문고는 어디 둘꼬/두어라 강산풍월이니 한데 둔들 어떠리"라고 호연지기와 안빈낙도를 노래하였다.

 

고려시대 이규보의 모듈설계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된다'는 실용정신을 한 칸짜리 움직이는 정자로 만들고자 한 사람이 있다. 고려시대 이규보는 바퀴를 달아 그늘 쪽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한간짜리 정자 설계도를 만들었다. 사방을 삼등분하여 9개의 공간을, 가운데에 바둑판이 하나를 차지하고 바둑 두는 사람 둘과 가수, 거문고타는 악사, 시에 능한 승려 즉 시인 그리고 주인 등 6인에게 배분하고 나머지 두 자리에 거문고와 술상을 놓으면 9개의 공간이 꽉 찬다. 요즈음 극장의 의자 너비가 45㎝내외이니, 60㎠의 모듈에 의한 훌륭한 설계도인 셈이다.

 

거실의 쇠퇴와 부엌 중심 문화

 

한국의 주거문화는 한옥에서 양옥으로, 단독에서 공동주택으로 패턴이 바뀌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 중 두드러진 것이 침실과 거실의 구별이다. 한옥의 대청에 해당되는 위치에 거실이 들어온 것이다. 안방은 부부침실이 되고 건넌방은 자녀들의 침실이 된 것이다. 프랑스의 사전에 침실이란 단어가 등장한 것이 1800년대 초라 하니 한 세기 이상 늦은 셈이다. 그런데 요즈음 생활패턴을 분석해 보니 가족전체가 거실에 있는 시간은 줄어들고 부엌과 식당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한다.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 한 대에 전 가족의 시선이 집중되던 예전과 달리 요즈음은 휴대폰, 컴퓨터가 이를 대신하다보니 구태여 거실에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다보니 자연히 중심이 옮겨진 것이다.

 

건축사의 내일은 앞서가는 창의정신

 

요즈음 서울의 일부지역에서는 조리 등 부엌일을 하면서 자녀들의 과제를 돌봐주는 데는 식탁을 겸한 아일랜드 조리대가 가장 적격이라 하여, 부엌의 개조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IT산업의 발전으로 인한 이러한 주거패턴의 변화는 이제 전국적으로 번질 것이다. 지금 한국은 아파트의 평수가 부와 지위의 척도가 되던 천박한 자본주의 행태가 1~2인 세대의 증가와 더불어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변하고 있다. 이제 거실 없는 아파트가 등장할 날도 머지않은 듯싶다. 건축사들의 시대를 앞서가는 창의정신이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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