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인 은퇴한 현역

오랜 기다림 끝에 얻어낸 인터뷰 약속을 위해 찾아간 곳은 명승건축그룹 사옥 맥캔리하이츠 8층의 작은 사무실. 그의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작은 사무실 안에서 와이셔츠 차림으로 기자를 맞은 이회장은 종합건축사사무소 명승건축을 비롯해 5개의 계열사에 3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그룹 회장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만큼 소탈하고 검소한 모습이었다.
창업 10년 만에 은퇴, 위기 속에서 삼불삼무 원칙을 말하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건네받은 대한카누연맹 회장 명함 위에는 카누연맹 회장 직함 외에도 네 개의 타이틀이 가지런히 박혀있어 현재의 이회장의 위상을 말해주고 있었다.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국민체력센터 이사장, 한국건설문화원 공동대표, 서울산업대학교 명예학 부장(교수). 인터뷰를 잡기 어려웠던 그의 바쁜 일정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며 질문을 던졌다.
“대한카누연맹 회장에 취임하신 것을 건축사의 한사람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뵙기가 정말 어렵더군요.”
“죄송합니다. 실은 제가 체육인도 아니면서 체육계의 중책을 맡은 것 같아 외부에 크게 떠드는 것이 꺼려졌었거든요. 헌신과 봉사로 임하는 자리이긴 하지만 제가 원래 언론에 드러내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요.”
건축계에서 명승건축그룹 정도 되면 건축사지나 관련 신문에 자주 이름이 오르내려야하는데도 그동안 그런 사례를 보지 못한 것이 생각나 이회장의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회장은 대학 졸업 후 서울건축에 입사, 설계 분야에 첫발을 내딛었으며 1986년 입사동기 5명과 함께 명승건축을 창립했다. 돌아가면서 대표이사를 맡는다는 동업 정신을 바탕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향후 10년간 눈부신 발전을 거두었으며, 이후 이회장은 창업 당시의 약속을 지켜 현업에서 은퇴, 미국으로 향학의 길을 떠난다. 그러나 1년여 만에 터진 IMF 사태는 그를 다시 한국으로 불러들이기에 이른다. 돌아온 이회장은 회사 임원들에게 삼불원칙과 삼무원칙을 천명했다.
“나는 은퇴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라도 세 분야의 영향력 있는 분들과는 만나지 않을 것이다.”이회장이 말하는 사람들이란 발주사 임직원과 건축 분야 공직자, 그리고 건축과 교수님들이다. 회사의 인사와 자금과 협력업체 선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그렇게 임원들에게 재량권과 책임감과 오너쉽을 갖게 함으로써 지금의 명승건축그룹은 각 부문 사장 책임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자유로운 경영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매순간, 매사에 최선을 다하며 즐겨라!
이회장은 학창 시절 축구경기에서는 골키퍼로, 야구경기에서는 투수로 활약했던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으로 봉사해오면서 지난 5월 대한카누연맹 회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런 절차였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체육단체장이라는 자리는 명성과 재력과 스포츠맨쉽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될 수도 해낼 수도 없는 자리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전문자격사들 중에서 이런 자리에 오른 사람을 찾아보기란 웬만해선 불가능하다. 4년간의 임기 동안 매년 수억원의 지원금을 대야하는 만큼 그만큼의 통솔력과 재력을 필요로 하는 자리인데 그런 자리에 건축사로서 이회장이 취임한 것이다.
‘즐겁게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삶의 목표이며 좌우명인 동시에 집안의 가훈이라는 이회장은‘즐거움이란 돈을 주고 사는 쾌락이 아니라 봉사하는 삶 속에서 저절로 우러나는 것이어야 하며 매순간, 매사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그 속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회장은 공군 중위 시절 연세대 경영대학원에 다니면서 만나게 된 이화여대생을 평생의 반려자로 맞아 슬하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아들은 토론토의 로펌에 다니는 예비 변호사이며 딸은 미국과 영국에서 수학 후 현재 런던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에서 설계 업무를 맡고 있다. 작년 동대문운동장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바 있는 딸 덕분에 선진화된 시스템을 도입해 설계사무소 경영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이회장의 얼굴에 자랑스런 미소가 스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외과를 졸업한 아내도 회화 개인전을 열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말을 조심스레 꺼내는 그를 보면서 가족 전체가 예술가로서 함께 나누고 성취하는 삶에 새삼 부러움이 일기도 했다.
“The Value Creator”“The Art Inventor”“The Win Win Developer”
이회장이 그의 경영 이념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건축 문화의 새로운 가치창출, 건축을 예술적 바탕에서 테크놀러지와 결합하는 진정한 건축가 정신, 고객과 명승 임직원이 함께 누리는 번영과 명예’이다. 이것은 곧 명승의 DNA이기도 하다.
그는 건축사사무소 입사 전에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건축 계통 대학원을 졸업하고 후에 경영 쪽에 발을 내딛는 보통의 건축가들과는 처음부터 달랐다 할 수 있다. 그는 다른 건축사들이 갖지 못한 전문 경영 기법을 건축 설계에 접목시킨 최초의 건축사일지도 모른다. 1994년부터 해외 진출을 시도해 20여 개국에서 설계와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명승의 남다른 저력은 경영학을 통해 단단히 기반을 다진 이회장의 능력에서 나오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러나 그는 단순한 건축가나 경영자가 아니다. 명승건축그룹 사옥인 맥캔리하이츠에는 예술가로서의 그의 창조성이 곳곳에 배어있다. 몬드리안의 그림을 이용한 출입문이라든가 식물 문양으로 장식한 창문들, 직접 디자인해 제작한 직원들의 서류함 겸 책꽂이,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퍼즐형 책상 등, 많은 인테리어와 가구에서도 그의 번득이는 창의성과 예술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번득이는 창의성, DAAM에 여생을 걸다

“DAAM은 제 여생을 걸고 추진하는 생애 최고의 작품이 될 겁니다. 저는 모든 것을 DAAM에 걸었습니다.”
DAAM은 “Design & Arts Arcadia of Myungseung”의 약자로 강원도 경춘고속도로 강촌 나들목 근처에 들어설 세계 규모의 아트센터 건설 프로젝트이다. 강원도 전력 IT 문화복합산업단지의 일부로 세워질 DAAM은 2,500석 규모의 국내 최대 콘서트홀과 1,000여실에 달하는 5성 호텔 급 문화예술인 체류 시설, 그리고 300여실의 창작 스튜디오를 갖춘 복합 예술 문화 체험 공간이면서 레저 시설을 갖춘 문화 인류의 이상향이 될 예정이다. 전문 아티스트에겐 무료 숙식을 제공하고 일반인들에게 체험과 배움을 통한 성취의 기회를 만들어주는 곳. 이회장은 DAAM을 통해 예술 문화가 생활 속에 심화되고 국민의 삶의 질이 한 차원 높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또한 이 건물은 최대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건축이 한데 어우러지는 환경 친화적 건축물이 될 것이며 그 한 예로 에어컨 대신 석빙고를 만들어 대류 현상을 일으켜서 실내 온도를 조절하는 방식을 채택할 계획이다.
건축과 예술의 만남을 주선하고 스스로 즐긴 김수근 선생처럼, 이순조회장 또한 건축을 통해 예술의 완성을 꿈꾸며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거장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회장처럼 원대한 꿈을 가지고 인생을 성공적으로 가꿔나가는 건축가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나라 건축계의 앞날은 밝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가슴 설레었던 한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