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절약계획서’ 검토기관 4곳이 전국 지자체 251개 맡고 있어

건축물 인허가 행정업무 차질 ‘심각’
창호‧단열재 강화로 인한 재검토도 문제
‘녹색건축물 조성 지원법’ 공포에 따른 후속조치로 지난 해 9월부터 시행 중인 ‘건축물의 에너지절약 설계기준’의 실효성이 논란이 되고 있다. 기준 내 ‘에너지절약계획서’ 처리가 길어져 건축물 인허가 업무가 지연되는 등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는 에너지절약계획서 제출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정 전에는 아파트·연립주택, 2천㎡이상 숙박·의료시설, 3천㎡이상 판매·업무시설 등에만 적용됐지만, 개정이후 연면적 합계 5백㎡ 이상 건축물로 확대됐다. 실질적으로 소형건축물 외에 모든 건축물에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건축허가 시 제출해야하는 에너지절약계획서는 현재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에너지관리공단, 한국시설안전공단 외에 한국감정원, 한국교육환경연구원 4곳에서 검토를 받고 있다. 4기관은 전국의 시‧도‧군(구)로 나누어서 검토 중인데, 예를 들어 서울시 같은 경우 강서‧은평‧중랑‧강동‧광진‧양천‧종로구는 에너지관리공단, 서울 관악‧서대문‧송파‧강북‧금천‧노원‧성동구는 한국시설안전공단, 강남‧서초‧동작‧동대문‧중구는 한국감정원, 서울특별시‧마포‧구로‧영등포‧성북‧도봉‧용산구는 한국교육환경연구원이 검토를 전담하고 있다.
문제는 이 4곳에서 처리하는 검토기간 길어져 건축물 인허가 업무에 차질이 생긴다는 점이다. 이처럼 검토기간이 길어진 이유 무엇일까? 그 답은 검토기관에서 찾을 수 있다.
한 검토기관을 통해 알아본 결과, 하루에 약 60여건 정도의 에너지절약계획서를 직원 1명이 검토하고 있었다. 국토부가 지정한 기관별 도‧시‧군(구) 지자체수를 보면, 에너지관리공단 72개, 한국시설안전공단 60개, 한국감정원 61개, 한국교육환경연구원은 58개를 각각 맡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전국 건축허가 면적이 1억2,702만㎡, 건축허가 동수가 22만6,448동 인 점을 비추어볼 때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 검토업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축물 인허가를 맡고 있는 건축사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경기도 광명의 한 건축사는 “계획서를 검토기관에 보내고 연락이 없어 전화를 걸면, 통화조차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현실에 맞지 않고 피해만 야기 시키는 에너지 관련 제도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건축사는 “에너지절약대상 협의를 하는데 15일이상이 걸린다. 그나마 에너지관리공단에서 받는 경우는 그래도 협의가 소통되어 빠르다. 감정원등 인증기관에서는 협의차가 찾아가려해도 만나주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건축사사무소에서 에너지절약계획서 작성부터 검토완료까지 기간을 알아보니, 대략 한 달 남짓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건축사들은 “건축물 인허가 관련 준비를 다 해놓고, 이 계획서를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 같은 문제는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부산지역에서도 에너지관리공단 담당자의 업무량 과다로 인해 협의업무를 전달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산건축사회 측 “부산시의 일부 기초자치단체의 경우, 서울지역 성남에너지관리공단과 협의하도록 해, 수차례 출장 등으로 과다한 협의시간과 비용이 소모돼 건축주에게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밖에 현행 에너지절약계획서 제도는 여러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단열재나 유리 등의 두께를 기존 설계보다 상향해 단열 성능의 향상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도 허가권자가 검토기관에 재협의 요청하고 있다. 즉 검토기관에서 검토의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경우에도 허가권자가 무조건 재협의를 요청하고 있어 이중으로 검토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한건축사협회는 이와 관련해 지난 해 9월부터 피해 사례조사에 착수했으며, 관련 내용을 국토부에 전달해 제도개선을 요청했다. 또한 올 1월 협회와 국토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에너지절약계획서 운영 관련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국토부 관계자는 “검토기관 재추가를 검토하겠다”며, “운영상 문제점 등은 지속적으로 협회와 협의해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