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호에는 서양건축역사에서 소위 표현주의자로 불린 또 한 명의 건축사를 소개할까 한다. (본 연재에 소개된 표현주의자는 휴고휴링, 막스 타우트와 한스 폴지히였다.) 인종의 부침이 심해서 독일에서의 빠른 성공에 이어 나치 정권이 들어서자 영국으로 망명, 팔레스타인을 거쳐 결국 미국에서 암으로 생을 마감한 20세기 독일의 건축사 에리히 멘델존(Erich Mendelsohn, 1887-1953)이다. 유대인 출신의 멘델존은 아인쉬타인 타워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 특유의 역동적이고 단순한 스케치로도 유명하다. 그의 전매특허인 이 스케치 때문에 이탈리아의 미래주의와 같이 그저 역동적이며 환상적인, 다시 말해 표현(?)만 풍부한 건축으로 곡해 되어왔다. 그러나 마치 초기 설계 아이디어를 표현한 듯한 스케치들은 많은 경우 건물이 준공된 후 그려진 것이고, 이 같은 드로잉 기법은 멘델존이 설계일이 없어 극장의 무대디자인이나 포스터디자인으로 연명했을 때 습득된 것이었다. 더욱이 그의 간판 작품인 아인쉬타인 타워는 천체물리학을 위한 실험실과 관측장비가 필요했고, 그런 이유로 치밀한 기능분석과 정밀한 설치가 중요했기에 상징성보다는 실제적인 접근이 필요했던 프로젝트였다.(물론 그 타워는 유기적인 형태로 유명해 졌지만…) 또한 그가 미스, 그루피우스와 더불어 독일 근대건축의 구심점이자 기원으로 볼 수도 있는 링(Der Ring)의 창립멤버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휴고헤링과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건축사적 평가가 온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건축사적으로 멘델존은 현대적 극장과 백화점 건축의 전형을 제시한 것으로 여겨진다. 본 코너 제18편 “표현주의 건축, 문화로 사회를 통합하다”에서 언급했듯이 극장이라는 문화적 기능을 위한 건물형식은 전후 독일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제안이었다. 따라서 멘델존이 현대 극장건축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지만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했던 그가 당시 자본주의의 상징인 백화점 건물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건축사적 비평은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는 동시에 소비에트연방공화국에서 사회주의적 성격의 프로젝트들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1925년부터 1932년까지 유럽 각지에 6개의 크고 작은 상업적 건물을 설계했다. 그 중 두 개는 작은 상점(Rudolf Petersdorff store in Breslau, 1927 / Doblouggarden store in Oslo, 1932)이고, 두 개는 백화점 리모델링 프로젝트(Schocken department store in Nuremberg, 1925 / Cohen & Epstein department in Duisburg, 1925) 그리고 두 개는 신축 백화점 프로젝트(Schocken department store in Stuttgart, 1926 / Schocken department store in Chemnitz, 1927)다. 이 중에서 우리는 그의 첫 신축 백화점 건물인 스투트가르트 쇼큰백화점을 살펴보자.


건축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0년에 철거된 이 건물은 스투트가르트 시,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던 블록의 남측 끝에 위치해 있었다. 성곽이 헐리고 생긴 완만한 곡선도로가 대지의 남측 전면을 지나가고, 대지는 그 도로의 중앙에 위치하여 결과적으로 건물은 그 블록의 랜드마크가 될 수밖에 없는 맥락적 상황이었다. 대지의 전면에 새로 생긴 자동차도로와 블록 내부의 오래된 작은 가로들은 이 건물이 두 가지의 상이한 맥락에 반응해야 하다는 것을 의미했고, 멘델존은 덩어리와 입면의 구성으로 그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남측 자동차도로 쪽으로 네 개의 층을, 블록을 향해서는 두 개 층으로 구성된 덩어리를 배치하고 그 두 덩어리가 만나는 경계 양끝에 코어를 놓았다. 전면 도로를 향해 돌출된 남서측의 투명한 반원형 코어는 방문자들을 위한 수직 동선을 담당했고, 블록 안으로 삽입되어 있는 것은 직원들을 위한 것이다. 이 두 코어를 경계로 하여 입면의 요소들도 구별된다. 이 건물은 철골구조를 주 구축방법을 하여 콘크리트, 유리, 철 그리고 전기설비 등 당시로 본다면 최신 기술과 재료를 사용한 건물이었다. 멘델존은 이 구축방법과 재료가 가진 장점이 드러나길 원했다. 남측 입면은 주 구조체인 철골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벽돌과 석재마감으로 수평적 육중함과 창을 안으로 밀어 넣어 그림자 효과를 강조한 반면 블록 쪽 입면들은 단순한 벽돌쌓기와 요철 없는 창의 마감으로 평면적이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 맥락에 반응한 덩어리들의 구성은 결과적으로 각층 모두 다른 평면을 만들어냈다. 멘델존은 3개의 층을 관통하는 빛의 중정을 만들어 채광과 환기의 약점을 보완했다. “ㅁ”형식의 지상평면은 상층으로 올라가면서 점차 줄어들고, 줄어든 곳은 테라스로 사용되어 외부와의 소통을 가능케 했다. 지하층부터 지상3층까지 각 평면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성격에 맞게 상품들이 배치 진열되고, 손님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를 경험하며 쇼핑과 휴식이 결합된 새로운 소비를 할 수 있었다. 멘델존이 제시한 백화점은 도시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또 하나의 문화적 장치였다. 전기설비의 도입, 철 프레임과 유리로 인한 투명성의 극대화는 벨기에의 아르누보 건축이념을 보는 듯하다.(본 코너 제2편 “사회주의 이념이 건축으로: 빅토르 오르타의 ‘민중의 집’” 참조) 자본도 투명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은 걸까?

우리 주변에 산재해 있는 백화점들로 눈을 돌려볼까. 백화점의 손님들은 모든 빛과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당한 채 소비에만 집중하도록 되어있다. 밖으로는 철저히 폐쇄적인 굳건한 소비의 성, 자본의 발전소에 다름 아니다. 지금은 거대 마천루와 메가스트럭쳐가 있어 도시에서 백화점과 같은 건물형식이 갖는 위상이 그 당시와는 다르겠지만 여전히 백화점은 도시에서 중요한 집산적 랜드마크다. 마침 이 시점에 송하엽 교수(중앙대)의 신간 “랜드마크; 도시를 경쟁하다가” 출판되었다. 과연 우리의 백화점 건물은 랜드마크로서 자격이 있는가?
수주 초기 멘델존은 건축주인 잘만 쇼큰(Salman Schocken, 1877-1959)과 지독한 논쟁을 해야 했다. 그러나 논쟁은 생산적이었고 결국 사라졌지만, 이 백화점은 현대적 백화점의 전형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