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창가수 너훈아. 본명은 김갑순.

그의 사망을 전하는 신문기사를 보니 그가 가장 싫어했던 말이 ‘짝퉁’이었다고 한다. 나는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몇 번 본적이 있다. 얼굴이 크고 퉁퉁하며 눈도 부리부리한 모습부터 영락없는 ‘나훈아’다. 노래할 때 약간 얼굴을 비스듬히 돌리고 입꼬리를 말아 올리면서 허연 이를 다 들어내며 씩 웃는 모습을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초대형 가수인 나훈아가 가지 않는 곳. 이를테면 밤업소나 복지관을 찾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준 명사였다.

모창가수로서 성공하려면 얼굴이나 풍채도 그 가수와 비슷해야하고 음색과 창법도 흡사해야 한다. 신문기사를 보니 그는 나훈아를 흉내 내기 위해 집 장롱 속에 들어가서 매일 피나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동네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할까봐... 그렇게 노력해서 그는 원본과 헷갈릴 정도로 비슷하게 표정도 짓게 되었고 노래도 하게 되었다. 이름도 너훈아로 지었다. 짝퉁이 아무리 똑같아도 명품백 취급을 받을 수 없듯이, 그가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고 해도 나훈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대신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나훈아로 착각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계속 무대에 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짝퉁’으로 취급받지 않고 모창가수로서 당당하게 대우 받기를 원했던 것 같다.

너훈아를 보면서 작금의 건축계를 생각해 본다. 비단 건축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건축디자인의 표절기사를 접할 때면 한숨부터 나온다. 심지어는 설계공모 당선작으로 발표를 했다가 표절이 밝혀져서 당선을 취소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베끼지 않았다고 해도 표절로 의심되는 디자인이 얼마나 많은가. 현상설계가 난무하는 작금의 건축계. 여기저기 당선작을 보면 비슷비슷한 디자인이 많기도 하지만 디자인도 유행이 있는 모양이다.

노출콘크리트를 사용한 사각 건물은 용도에 상관없이 그 형태가 유사하고,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형태가 유행하면 너도나도 벌레모양으로 디자인하고, 누군가 지붕에 잔디를 깔면 너도나도 지붕에 잔디를 올린다. 문제는 그런 유사한 디자인이 대부분 당선이 된다는 것인데, 심사위원들도 특별히 위험 부담 없이 유행에 편승한 설계안을 선정하는 모양이다. 그러니 때로는 누가 봐도 베낀 표절 작품이 당선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심사위원들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너훈아는 세상에 다 드러내 놓고 ‘나훈아’를 모창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가 더 유사해서 원본과 헷갈리기를 기대한다. 반면 교묘하게 표절을 일삼는 건축사는 원본이 세상에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그러다가 원본이 노출되면 누가 봐도 베낀 것이라고 알 수 있는데도 절대 베낀 게 아니고 비슷하지도 않다고 우긴다. 창작과 표절의 차이는 명백하다. 디자이너로서 양심을 걸고 내가 용납이 되면 창작이고,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려서 드러내고 싶지 않다면 표절이다. 그러나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릴 양심이 있는 사람이 표절해 놓고 표절이 아니라고 억지를 쓸 리 만무하니 남들이 보면 표절이요, 자기가 보면 창작이 되는 것이다.

너훈아의 빈소를 찾은 또 하나의 나훈아인 ‘나운아[본명 김명창]’의 사진을 본다. ‘패튀김’과 ‘태지나’ 등도 빈소를 찾았다고 한다. 그들이 비록 나훈아, 패티김, 태진아라는 유명 가수를 모창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당당하고 솔직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한나라의 문화를 이끌고 있다는 건축사들은 모창가수들의 삶에서 기본을 배워야 한다.

또 하나의 나훈아로 멋지게 살다 간 너훈아의 명복을 빈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