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은 해외 건축 동향과 디자인 트렌드 보도 강화를 위해 Archimaera Architecture (New York) 소속 정선아 건축디자이너의 건축·디자인 칼럼 및 기획기사를 게재합니다. 해외 건축제도 아래에서 실무 경험과 과정에서 겪었던 생각들을 가감없이 펼쳐내 국내 건축계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호주는 남반구에서 가장 다양한 기후 조건을 가진 나라 중 하나다. 햇빛은 강하고 공기는 건조하며, 계절마다 온도 차가 크다. 이런 환경은 건축이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과 사람들이 머무르고 일하는 공간의 질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멜버른의 RMIT University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기후적 대응과 디자인 교육의 실험을 함께 담을 수 있는 건축물을 구상했다.
RMIT의 디자인 전공 학생들은 여러 캠퍼스와 시설에 흩어져 있었고, 이들을 한데 모아 협업과 교류를 촉진하는 공간을 필요로 했다. 각기 다른 전공자들이 같은 지붕 아래에서 일하며 서로의 과정을 보고, 때로는 프로젝트를 공유하며, 환경과 도시의 문제를 함께 실험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했다. 이런 맥락에서 완성된 RMIT Design Hub는 기후 대응과 학문 간 협업이라는 두 개의 축 위에서 건축이 사회적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건축사 션 갓셀(Sean Godsell)은 대학의 교수진, 엔지니어, 산업 파트너들과 협업하며 기후에 적응하면서도 유연하게 쓰일 수 있는 건축물을 구상했다. 이곳의 스튜디오는 고정된 프로그램에 묶이지 않고, 연구와 전시, 토론과 실험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며 끊임없이 공간을 재구성한다. 복도와 계단은 단순한 이동 통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전공과 세대가 마주치는 교류의 장으로 설계되었다. 하나의 건축물이 환경을 제어하고, 동시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조직하는 방식이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다.
RMIT Design Hub1)는 기술적 지속가능성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환경에 반응하는 동시에, 여러 디자인 전공이 한 공간 안에서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문화적 지속가능성’을 함께 탐색한다. 이 건물은 에너지 효율을 넘어서 사람과 지식, 그리고 도시를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1. 기후와 협력하는 파사드, 유연한 테크놀로지
① 태양열과 디스크 시스템
디자인허브의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자동 회전하는 유리 디스크 외피다. 이 외피는 RMIT Solar Research Faculty와의 협업으로 개발된 시스템으로, 향후 태양광(BIPV) 모듈로 교체될 수 있도록 모듈형 셀 구조(cell modular system)로 설계되었다. 즉, 한 기술에 고정되지 않고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새로운 세대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열린 시스템(open system)’이다.2) 디스크는 건물의 BMS(Building Management System)에 연결되어 태양의 각도, 바람의 방향, 실내 온·습도에 따라 자동으로 회전하며 빛을 조절하고 일사열을 제어한다. 이처럼 외피는 단순한 입면 장식이 아니라, 환경 데이터와 실시간으로 상호작용하는 생체적 장치로 작동한다.
내부 공간은 모듈러 파티션 시스템을 통해 전시, 워크숍, 세미나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빠르게 변환된다. 건물의 중심부를 고정된 복도형으로 나누지 않고 가변형 오픈플랜(open plan)으로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이 유연한 구조 덕분에 공간은 고정된 기능을 넘어 연구실이 전시장이 되기도 하고, 토론장이 스튜디오로 바뀌기도 한다. 학제 간 공동 프로젝트나 단기 전시가 빈번히 이루어지며, 공간이 스스로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최상층 세미나실은 일부 축선이 의도적으로 비켜나 있다. 매스의 미묘한 틀어짐과 유리 디스크 사이로 들어오는 빛의 변화가 공간 곳곳에 다른 깊이와 시선을 만든다. 이 층에서는 사용자의 움직임이 단조로운 직선이 아니라, 빛과 구조를 따라 자연스럽게 굴절된다. 공간은 정적인 연구의 무대라기보다, 지각과 관계가 계속해서 재조정되는 실험의 장으로 작동한다.
또한 두 개의 건물은 지하층에서 연결되어 있다. 지하 회랑을 따라 이동하면 건축, 산업디자인, 패션 등 서로 다른 전공의 스튜디오가 맞닿는다. 이 물리적 연결은 단순한 통로를 넘어 학문 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흐름을 만든다. 이곳에서는 ‘공간의 유연성’이 곧 ‘관계의 유연성’으로 확장되며, 건축이 어떻게 사회적 상호작용을 구조적으로 조직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② 이중외피와 자연 냉각
외피는 두 겹의 유리층 사이에 공기층(cavity)을 둔 이중외피(double-skin facade) 구조다. 외피 사이의 공기가 물 트레이(trays of water)를 지나며 증발 냉각(evapo
rative cooling)을 일으켜 열 축적을 완화하고 신선한 공기를 실내로 유입한다. 이는 기계식 냉방에 의존하지 않고 기류와 수분의 자연적 순환을 이용해 실내 열환경을 조절하는 패시브 시스템이다. 결과적으로 외피는 건물의 ‘열막(熱膜)’으로서 기후응답형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 공간과 사용자 — 교류를 유도하는 구조적 장치
션 갓셀은 엘리베이터를 구석으로 밀어 넣고, 계단과 복도를 길게 두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하는건 거창한 공용홀보다,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가야 하는 복도와 계단이라는 점 때문이다. RMIT Design Hub의 내부 동선은 이 사고를 그대로 구현한다. 중앙에는 긴 복도와 개방된 계단이 놓여 있고, 학생과 연구자가 오가며 자연스럽게 마주치도록 설계되었다. 복도와 계단은 이동의 통로이자 우연한 대화의 무대이며, 건물 전체를 하나의 열린 커뮤니티로 엮는 구조적 장치다.
1) 소재지 : 멜버른/연면적:1만3,000제곱미터/층수 : 지상8층, 지하2층/ 준공년도 : 2012/ 설계 : Sean Godsell Architects
2) The architects designed a solar-responsive dual skin facade without photovoltaics but with built-in scope for experimentation including PV capability that can be upgraded as solar technology moves on. (출처: RIBA Journal, “Rapid Response Unit” (2016).
[참고문헌]
1. Sean Godsell architects
https://www.seangodsell.com/rmit-design-hub
2. Harvard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Design Kenzo Tange Lecture
https://www.youtube.com/watch?v=OIgUG-V64z4&t=3190s
3. RIBA Journal, “Rapid Response Unit” (2016)
https://www.ribaj.com/intelligence/rapid-response-unit
4. architectural review
https://www.architectural-review.com/places/australia/rmit-design-hub-by-sean-godsell-architects-melbourne-australia
5. divisare
https://divisare.com/projects/227798-sean-godsell-architects-rory-gardiner-earl-carter-rmit-design-hub
6. 사진 및 도면자료
https://www.archdaily.com/335620/rmit-design-hub-sean-godsell
https://divisare.com/projects/227798-sean-godsell-architects-rory-gardiner-earl-carter-rmit-design-hub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