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두

- 박혜경

창밖에 예인선이 정박해 있는 

부두가 보였다

그는 취한 얼굴을 창밖으로 내밀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부두로 걸어 나갔다

나는 니가 상상한 존재일 뿐이야

나는 너를 상상한적 없어

너는 니가 상상하지 않았다고 상상하는구나

창밖으로 예인선이 사라진 

텅 빈 부두가 보였다

화창한 날씨가 계속되었다

모래 운반선이 느리게 부두를 향해 다가왔다
 

- 박혜경 시집 ‘한 사람을 생각했다’ 중에서/ 파란/ 2025년

나는 진화의 가장 위대한 힘은 상상이라고 생각한다. 상상하지 않았으면 새의 날개가 없었을 것이고, 상상하지 않았으면 고래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상상은 단순히 생각에 머물지 않고 현실로 나타난다. 그렇지 않았다면 두 발로 걷는 인류는 나타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이 세계가 상상의 산물이다. 취한 세계라고 해도 좋다. 예인선과 모래 운반선을 착각했다고 해도 그 착각이 현실로 인화되어 나타나는 세계가 여기다. 그 착종이 느리게 부두를 향해 다가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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