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길
- 전원책
종이를 발기 발기 찢었다.
돌아가는 길은 왜 그리 어두운지
자꾸 길을 잃었는데
길을 그리는 것이
가능했을 지도 모를 흰 종이 한 장을
찢어 한 웅큼
까마득한 시간 너머로 날려 보냈다.
조각난 종이들은 무참하게도
깊은 어둠의 수렁으로 흩어져
다시는 조립되지 못할 거였다.
조립되어 길이 되지 못할 거였다.
그러나 흰 종이인 채로 있었다면
나는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음을
믿었을 터이므로
얼마나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인가.
다시 갈 수 없는 곳에서.
- 전원책 시집 ‘슬픔에 관한 견해’ 중에서/ 청하/ 1991년
굳이 양자역학을 빌려오지 않더라도 세상은 어리둥절한 일이 여반장으로 있다. 빛과 전자의 성질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듯이 사랑과 증오가, 기쁨과 슬픔이, 가정과 결과가 서로 상반되어 얽혀 있다. 지도는 언제고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수단이지만 오히려 지도가 있음으로 해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는 이유로) 머물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떠날 확률과 머물 확률은 지도의 유무로 변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머무른 곳도 다시 갈 수 없다면 우리는 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함성호 시인
haamx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