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알바로 시자·카를로스 카스테네이라·박창열 건축사 참여한 작품…계곡 능선이 어우러진 건축의 백미
생명과 죽음의 순환이 새겨진 공간, ‘소요헌’에서 넋을 잃고,
물길 따라 지어진 승효상 건축사의 ‘와사’에서 깨달음을 얻다

“모니터와 도면만 오가던 시선이 산세 속 바람을 품은 거친 콘크리트와 세월을 견딘 모과나무를 향하다 보니 힐링도 되고, 마음속에 늘 자리하던 격랑같은 스트레스도 잊게 되는 것 같아요.” 9월 23일 사유원을 방문한 한 건축사의 사유원 답사 후 소감이다.

사유원 입구인 치허문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사유원 입구인 치허문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에 위치한 사유원(思惟園)은 팔공산 지맥 70만 제곱미터에 조성된 사색 공간이다. 300년 이상의 수령을 가진 모과나무와 세계적인 건축사·조경가·예술가들의 작품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자리하고 있다.

사유원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목련·백일홍·모과·고송길 등 네 가지 탐방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목련길이 1시간 코스, 고송길은 네 시간이 소요되는데 건축탐방을 위해서는 승효상 건축사의 작품인 치허문에서 오당·와사를 거치는 고송길 코스가 안성맞춤이다.

소요헌 내부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소요헌 내부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소요헌 조형물(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소요헌 조형물(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미끄러지듯 달리는 동대구행 열차에서 소요원으로 향하는 버스로 환승하고, 사유원 ‘치허문(설계 : 승효상 건축사)’을 통과했다. 아직 정오를 넘기지도 않았는데 구름 사이로 비추는 9월의 햇살은 따가웠다.

소대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소대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비나리길을 따라 별유동천에서 땀을 한 번 훔치고, ‘소요헌(알바로 시자, 카를로스 카스테네이라)’과 ‘소대(알바로 시자, 카를로스 카스테네이라)’를 차례로 방문했다. 한국전쟁의 격전지였던 이곳에 자리한 소요헌은 생명과 죽음의 순환이 새겨진 공간으로, 알바로 시자는 피카소의 ‘임신한 여인과 게르니카’를 전시할 마드리드 오에스테 공원의 가상 프로젝트를 사유원에 새롭게 만들어냈다.

현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현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전망대로 기능하고 있는 소대를 지나 풍설기천년에서 참아왔던 감탄사를 터트렸다. 반 천년 모과나무들이 사유원의 심장부에서 모과를 주렁주렁 달고 향기를 내뱉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과 서리, 인간의 욕망을 이겨낸 모과나무들이 펼쳐진 풍설기천년(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바람과 서리, 인간의 욕망을 이겨낸 모과나무들이 펼쳐진 풍설기천년(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사유원에서 첫 번째로 지어진 ‘현암(승효상)’은 사랑방에서 수평의 파노라마, 안방에서 자연을 담아냈다. 붉은 철판의 그림자들 역시 인상 깊게 펼쳐진다.

명정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명정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이제 정상이 멀지 않다. 사유원이 ‘사람이 만든 자연의 정수’라고 소개하고 있는 ‘사담(승효상)’이 기다리고 있다. 물의 정원인 사담은 수생식물과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연못을 끼고, 레스토랑 몽몽미방이 자리하고 있다.

하늘만 보이는 마당인 ‘명정(승효상)’에 다다랐다. 일상의 흐름에서 벗어난 접근과 지형의 단차가 한눈에 나타난다. 콘크리트를 타고 흐르는 물줄기는 망각의 바다를 표현한다.

물탱크가 별을 보는 제단으로 거듭났다. 첨단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물탱크가 별을 보는 제단으로 거듭났다. 첨단 전경(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가가빈빈(최욱)’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사유원의 가장 높은 곳인 ‘첨단(승효상)’에 올랐다. 기존 물탱크 시설이 별을 보는 제단이 됐다. 꼭대기에는 십이지신이 새겨져 있고, 이곳에서는 치허문에서 출발해 소대, 사담을 오르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연못 너머로 와사가 펼쳐진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연못 너머로 와사가 펼쳐진다. (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첨단에서 ‘와사(승효상)’로 내려오며 곧 일정이 마무리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구멍 뚫린 철 지붕에서 쏟아지는 빛에서 일상으로의 회복, 일상공간으로의 귀환을 추진할 온기를 얻는다.

건축과 자연을 통해 사색과 사유를 할 수 있는 이곳이 바로 ‘사유원’이다. 

STO(주. 기린건장산업) 주최 답사 중 참석자들의 기념사진(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STO(주. 기린건장산업) 주최 답사 중 참석자들의 기념사진(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현장을 함께한 본지 편집국장 박정연 건축사의 '사유원' 영상본은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 가능합니다. 
https://youtu.be/25SzoGt36do?si=zFveujPTXjmfK0qb

<미니 인터뷰>

건축과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 이해현장과 전체 맥락 읽어내는 건축할 것

 

정지윤 건축사(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정지윤 건축사(사진=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정지윤 건축사(도홍 건축사사무소. )

비탈지고, 인적을 피해 유혈목이마저 지나가는 산길을 묵묵히 걸어 오르며 연신 눈과 머릿속에 건축공간을 담고, 그려내기를 반복하는 정지윤 건축사. 이른 아침, 부산에서 사유원을 찾은 그는 시간과 공간의 경험을 통해 건축철학을 정립해 나가고 있었다. 이날 일정을 함께 소화한 정지윤 건축사를 통해 사유원이라는 공간이 갖는 느낌과 울림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Q. 사유원 건축 답사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건축사 분들은 공감하실 텐데,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건축답사도 그런 일들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오랜만에 건축과 자연이 주는 공간적 매력을 느낄 수 있어 또 함께하는 건축사 동료 여러분들과 건축 활동,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게 돼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 것 같습니다.

Q. 사유원 곳곳에 건축물을 5시간 가량 꼼꼼하게 살펴보셨는데, 소감과 시사점이 있으신가요?
사실 건축적인 의도나 개념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과 공간을 경험해 가다 보니 사유원의 자연과 건축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건축주의 철학도 공간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었고요. 동료 건축사들과 담소를 나누며 다양한 공간 속에서 설계자의 건축의도를 헤아리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간섭이 아닌 관계를 맺게 된 것도 또 다른 동기부여가 될 것 같고, 이런 경험들이 대중에게 의미 있는 공간으로 표현되지 않을까 기대를 합니다.

Q.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참고할 만한 팁을 제시한다면?
사유원은 철학과 의도가 명확한 건축주와 설계자, 조경이 어우러진 장소성을 갖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배경지식을 전혀 갖지 않고 방문하면서 군락을 이루는 모과나무는 ?’라는 의문을 가졌고, 건축 곳곳의 철판들은 왜 저런 모양과 형태를 띠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건축사분들이나 대중들 역시 자연과 건축이 만들어낸 하모니를 직접 느껴보시면 제가 별도의 팁을 드리지 않아도 느끼시는 바가 있겠지만, 건축주의 생각과 의도를 먼저 이해하신 후 건축기행에 참여하시면 보다 홍미로운 여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제 자신에게는 공간과 맥락, 사람을 중심으로 다양한 환경이 어우러지는 사례를 체험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하고 싶은데 함께 해줄 수 있는 동료 건축사가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작은 디테일보다 전체 맥락을 읽어내는 시선이 결국 좋은 설계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사유원 답사 이후 정리된 일단의 경험치를 녹여내 결과물을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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