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의 독백 —
사소단장(娑蘇斷章)
-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치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 서정주 시집 ‘신라초’ 중에서/ 은행나무/ 2019년
사소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다. 가야의 허황후가 한반도에 유입된 남방문화의 영향을 말해 준다면 사소는 북방문화의 영향을 말해 준다. 한반도는 이렇게 북방문화와 남방문화가 혼융하는 지역이고, 그 절정이 구들과 마루의 융복합체인 조선집이다. 중국의 서왕모 격인 사소가 선도를 행하기 전 집을 떠나며 그 꽃밭에서 불렀음직한 이 노래는 세계내적 존재로서 세계의 비밀과 마주한 나의 세계 탐구를 말해 준다. 길이 아예 보이지 않을 때, 주문처럼 이 시를 외워보자. 문 열어라 꽃.
함성호 시인
haamx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