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가치와 보이지 않는 가치 균형 고민해
경계 위 소규모 건축, 네 면 그리드로 도시·일상 연결 시도
신진건축사 마지막 해, 수상 뜻 깊어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가운데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하며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던 수상작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을 다시 찾아 해당 건축물의 현재 모습을 살펴보고,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제43회 서울시건축상 신진건축상 부문 수상작, ‘그리드 149’(김미희 건축사·소수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다.
송파동의 고층 아파트 단지와 저층 주거지가 맞닿은 경계에 벽돌 그리드로 깊이 있는 입면을 만든 건물이 서 있다. 양면 그리드를 통해 시선을 조율해 거주자의 프라이버시와 개방감을 동시에 구현한 이 건축물은, 서울의 소규모 대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가구·다세대 주택과 달리 건물과 도시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한 사례다. 바로 제43회 서울시건축상 신진건축사 부문 수상작 ‘그리드 149’(김미희 건축사, 소수건축사사무소)다.
이 건물이 위치한 곳은 고층 아파트 단지와 저층 소규모 공동주거 지역이 맞닿아 주민들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공간이다. 경계에 놓인 건축물이기에 설계에서는 ‘열림과 닫힘의 공존’이 중요한 과제가 됐다. 저층 상업시설로 거리에 열린 공간을 만들면서도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장치가 바로 그리드였다.
“우리는 민간 소규모 건축물에서 건축주의 욕망과 도시적 가치 사이의 균형을 늘 고민합니다. 작은 땅에서 그 균형을 이루기는 쉽지 않지만, 이번에는 조금 가능했습니다.” 김미희 건축사의 말이다. 그는 같은 사무소 소속 고석홍 건축사와 함께 설계 방향을 검토하며 대지 조건과 건축주의 요구를 조율했다. 그렇게 ‘그리드 149’가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서울의 필지 중 80% 이상은 331㎡ 이하 규모이고, 그 절반은 주거지역에 속한다. 이 때문에 도시 풍경의 대부분은 다가구·다세대·상가주택이 채운다. 하지만 이런 건축은 대체로 최대 용적률 확보에 치중해 도시와 건물의 관계가 단조롭고 획일적이다. ‘그리드 149’는 이 틀에서 벗어나려 했다. 서측 양면 그리드는 거리와 건물 사이의 간격을 조율해 보행자에게는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 시선을, 거주자에게는 가림막 없는 풍경을 제공한다.
이 건물은 단지형 아파트와 다세대 밀집지의 경계에 들어섰다. 주민들은 종종 “다가구 주택이 이렇게 고급스러워도 되나요?”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이는 기존 주거 유형에 대한 고정관념을 드러낸다. 김미희 건축사는 오히려 이런 소규모 공동주거가 사회적 고립에 대응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건물의 네 면은 모두 그리드로 감쌌다. 일반적으로 더블스킨은 정면을 중심으로 설계되지만, 이 건축물은 네 면 각각의 조건을 고려해 입면을 계획했다. 벽돌의 깊이와 질감을 달리해 위치마다 다른 풍경이 드러나도록 했다. 대지의 맥락을 읽고 건축주의 요구를 반영하는 동시에 주민에게는 일상의 배경을, 행인에게는 작은 즐거움을 제공하려는 시도였다.
이번 수상은 김미희 건축사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만 45세 이하 건축사에게 주어지는 신진건축상 부문 출품 자격의 마지막 해였기 때문이다. 초창기에는 ‘젊은 건축사’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웠지만, 끝에 다다르자 그 시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번 수상은 건축적 여정을 새롭게 열어주는 이정표가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다음은 설계자 김미희 건축사와 함께 설계를 고민한 고석홍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김미희·고석홍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과, 특히 염두에 두신 점은 무엇입니까?
저희 사무소는 도심의 소규모 필지에 다양한 용도의 건축을 꾸준히 진행해왔습니다. 민간 주도의 소규모 건축을 계획할 때 가장 중시하는 점은 건축주의 욕망이라는 ‘보이는 가치’와 도시 속 건축물이 가질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가치’의 균형입니다. 작은 땅에서 최대 건폐율과 용적률을 채우다 보면 이 균형이 쉽게 무너집니다. ‘그리드 149’는 그 균형을 조금이나마 실현할 수 있었던 사례였습니다.
Q. 앞서 말씀하신 점들을 어떻게 구현하셨습니까?
서울의 필지 중 약 80%는 331㎡(100평) 이하이며, 그 절반 이상이 주거지역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건축은 저층 다가구·다세대 주택이나 상가주택입니다. 대부분 임대 수익을 목적으로 하다 보니 최대 용적률 확보가 최우선 과제가 되고, 건물과 도시의 관계는 단조롭거나 일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드 149’에서는 이 경계를 어떻게 다룰지 고민했습니다. 깊이 있는 입면으로 다양한 표정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특히 서측 정면의 양면 그리드는 길에서 건물을 보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조절해 거주자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도, 내부에서는 가림막 없이 바깥 풍경을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입니까?
‘그리드 149’는 단지형 아파트와 다세대 밀집지의 경계에 있습니다. 서울 시민들은 대체로 단지형 아파트를 선호하고, 다가구·다세대 주택은 어쩔 수 없는 대안 주거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장을 지나는 이들은 “이 건물은 무슨 건물이냐”, “다가구 주택이 이렇게 고급스러워도 되느냐”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소규모 저층 공동주거야말로 사회적 고립이 문제 되는 시대에 더 많은 연결과 소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부터 가지신 건축적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내년이면 사무소를 연 지 10년이 됩니다. 지금까지는 민간 개발 건축이 많았습니다. ‘소수’(Prime Number)는 고유성과 보편성을 함께 담고 있는 숫자 체계인데, 저희도 각 대지와 이용자를 분석해 고유성을 확보하고 도시에는 보편적인 역할을 하는 건축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작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 서울시건축상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사람들이 저희 건축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최근에는 공공건축 설계공모에도 참여하며, ‘소수’가 공공건축을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하고 있습니다.
Q. 이번 작품에 그 지향점을 잘 담아냈다고 생각하십니까?
건물 이름처럼 네 면 전체를 그리드로 감쌌습니다. 대부분 더블스킨은 전면에만 적용되지만, 우리는 각 면의 조건을 고려했습니다. 벽돌의 깊이와 질감을 달리해 보는 위치에 따라 다른 풍경이 드러나도록 했습니다. 대지를 읽고 건축주의 요구를 반영해 이 장소의 고유성을 살리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시도가 주민들에게는 일상의 풍경으로, 도시에는 작은 아름다움으로 다가가길 바랍니다.
Q. 이번 수상이 건축사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왔습니까?
올해가 만 45세 이하로 출품할 수 있는 마지막 해였습니다. 초창기에는 ‘젊은 건축사’라는 호칭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줄어드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마지막에 와보니 그 시간의 의미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수상은 건축적 여정을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Q. 최근 관심을 두고 있거나 앞으로 적용해보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올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주제전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주제는 ‘매력도시, 사람을 위한 건축’입니다. 작업을 하면서 우리의 건축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친근하게 다가가고 있는지 많이 고민하게 됐습니다. 서울시건축상도, 도시건축비엔날레도 결국 시민들과 공유하는 장입니다. 우리의 건축이 얼마나 공감을 얻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서울다운 일상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경험할 수 있는, 공감받는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