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 손미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을 두드린다. 나무문이 삐걱댔다. 문을 열면 아무도 없다. 가축을 깨무는 이빨을 자판처럼 박으며 나는 쓰고 있었다. 먹고사는 것에 대해 이 장례가 끝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뼛가루를 빗자루로 쓸고 있는데 내가 거기서 나왔는데 식도에 호스를 꽂지 않아 사람이 죽었는데 너와 마주 앉아 밥을 먹어도 될까. 사람은 껍질이 되었다. 헝겊이 되었다. 연기가 되었다. 비명이 되었다 다시 사람이 되는 비극. 다시 사람이 되는 것. 다시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까. 케이크에 초를 꽂아도 될까. 너를 사랑해도 될까. 외로워서 못 살겠다 말하던 그 사람이 죽었는데 안 울어도 될까. 상복을 입고 너의 침대에 엎드려 있을 때 밤을 두드리는 건 내 손톱을 먹고 자란 짐승. 사람이 죽었는데 변기에 앉고 방을 닦으면서 다시 사람이 될까 무서워. 그런 고백을 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계속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라고 묻는 사람이어도 될까. 사람이 죽었는데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나무문을 두드리는 울음을 모른 척해도 될까.

 

- 손미 시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중에서/ 민음사/ 2019년

연역과 귀납의 지루한 역사를 굳이 살피지 않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란 명제는 참이다. 그리고 죽지 않는 사람이란 예외도 없다. 그러나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는 사실은 명확한데 그 죽음이 나의 일이란 사실에 대해서는 다들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의 내용에 대해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 겨우 엿볼 수 있는 것은 사랑 때문이다. 사랑은 반드시 나의 죽음을 수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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