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마을에 새로운 거점이 된 건축물, ‘봉산·이랑’
좁은 골목 끝에서 마주한 바다의 장면들
시간을 담고 경계를 지우려 한 건축 실험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우수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하며 심사위원들의 주목을 받았던 수상작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을 다시 찾아 해당 건축물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24 강원도건축문화상 비주거 부문 우수상 수상작 봉산·이랑’(정재우 건축사, .종합건축사사무소 위고공간, 부산광역시건축사회)이다.

2024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수상작 ‘봉산·이랑’(설계=정재우 건축사·주.종합건축사사무소위고공간, 사진=윤준환)
2024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수상작 ‘봉산·이랑’(설계=정재우 건축사·주.종합건축사사무소위고공간, 사진=윤준환)

 2024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수상작 봉산·이랑’(정재우 건축사, 종합건축사사무소 위고공간)은 부산 영도 봉산마을의 작은 공터에서 시작됐다. 설계를 맡은 정재우 건축사는 이 건축물을 마을 공동체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했다. 주민들이 직접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조경 공간과 내부 환경 요소를 더해, 다양한 공간적 연출을 꾀하고자 고민했다.

디자인 모티브는 골목길 사이에 남아 있던 공터에서 가져왔다. 필수 동선을 분리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비워내는 과정을 거쳤으며, 두 개의 중정(中庭)을 두어 내부에서도 북항과 부산항대교를 조망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2024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수상작 ‘봉산·이랑’(설계=정재우 건축사·주.종합건축사사무소위고공간, 사진=윤준환)
2024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수상작 ‘봉산·이랑’(설계=정재우 건축사·주.종합건축사사무소위고공간, 사진=윤준환)

주변 주거지에 빛 반사나 사생활 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건물은 바다 쪽으로 배치하고, 리아스식 해안선처럼 구불구불한 형태로 계획했다. 필로티 구조를 활용해 공간을 띄움으로써 시야를 확장하고, 바닷가 풍경이 자연스럽게 건물 안으로 스며들도록 했다.

설계 과정은 쉽지 않았다. 시공 시기 공사비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당초 12억 원으로 책정됐던 공사비는 최종적으로 30억 원까지 늘어났다. 2021720일 착수해 2022815일 준공까지 13개월간, 설계대로 건축물을 완성하는 일은 그 자체로 큰 도전이었다.

2024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수상작 ‘봉산·이랑’(설계=정재우 건축사·주.종합건축사사무소위고공간, 사진=윤준환)
2024 부산다운건축상 은상 수상작 ‘봉산·이랑’(설계=정재우 건축사·주.종합건축사사무소위고공간, 사진=윤준환)

설계자 정재우 건축사가 끝까지 지향한 바는 분명했다.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공간, 흐르는 시간을 담는 공간, 사람들의 마음에 머무는 공간. ‘봉산·이랑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다. 화려하거나 크지는 않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바다를 마주하고, 마을은 새로운 결을 이어간다. 다음은 설계자 정재우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정재우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정재우 건축사,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위고공간(사진=주.종합건축사사무소 위고공간)
정재우 건축사, (주)종합건축사사무소 위고공간(사진=주.종합건축사사무소 위고공간)

Q. ‘봉산·이랑을 설계하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중점을 두신 부분은 무엇입니까?

봉산·이랑은 마을 공동체의 거점 공간으로 기능해야 했습니다. 자립적인 운영을 위해 방문객을 끌어들일 요소가 필요했고, 이에 조경 공간과 재배 공간을 더했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작물을 기르고, 그 안에서 다양한 생활의 장면이 펼쳐질 수 있도록 계획했습니다.


Q. 그러한 의도를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좁은 골목길 사이에 남아 있던 공터가 디자인의 모티브가 됐습니다. 필요에 따라 동선을 구획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과감히 비워내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내부에는 두 개의 중정을 두어 북항과 부산항대교가 자연스럽게 조망되도록 했습니다. 온실 구조가 주변 주거지에 빛 반사나 사생활 침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건물은 바다 쪽으로 배치했습니다. 건물 형태는 리아스식 해안을 닮은 구불구불한 선을 따르게 해 외부 조망을 최대한 확보했고, 필로티 구조를 적용해 건물을 띄워 올림으로써 주변 주거지의 시선이 바다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Q. ‘봉산·이랑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관급 사업이다 보니 설계 발주가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공사비 상승으로 인해 원안대로 설계를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2021720일에 시작해 13개월간 진행됐으며, 2022815일에 완공됐습니다. 당초 12억 원으로 발주됐지만, 최종 공사비는 약 30억 원에 이르렀습니다. 예산 부족으로 여러 차례 어려움이 있었으나, 영도구청이 예산을 확보해준 덕분에 결국 준공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Q. ‘봉산·이랑을 설계하시면서 특별히 지향하신 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제가 추구한 것은 시간이 켜켜이 쌓이는 공간이었습니다. 흐르는 시간에 반응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남아 기억되는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늘 질문해왔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그 공간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지에 대해 가장 중점적으로 고민했습니다.

 

Q. 그 지향점을 봉산·이랑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영도는 봉래산을 중심으로 골목길이 사방으로 뻗어 있습니다. 집 마당, 공폐가, 골목 사이의 비워진 공간마다 다양한 소통의 장면이 생겨납니다. 이러한 풍경은 정박된 선박의 이미지와 겹쳐지며, 마을의 시간적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시지각적 공간으로 형상화됐습니다. ‘봉산·이랑역시 그런 흐름 속에서, 뿌리처럼 뻗은 이랑 갈래의 비워진 마당에서 주민들이 참여하며 점차 마을 농장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

Q. 이번 수상이 어떤 의미였는지요?

건물이 준공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들이 보이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심사위원들께서 제가 의도한 바를 읽어 주셨고, 그 노력을 인정받은 듯한 보람을 느꼈습니다. 큰 에너지원이 되었고, 앞으로 더 나은 설계를 위한 밑거름이 됐습니다.

Q. 근래 들어 특별히 관심을 두고 계시거나, 앞으로 설계에 적용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최근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는 관계경계입니다. 적정한 거리의 경계, 관계의 경계, 빛의 경계 등 다양한 경계와 관계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주변의 일부가 되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경계를 통해, 가식적이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 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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