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GSD 졸업 후 뉴욕에서 활동 중인 정선아 건축디자이너
해외 실무에서 체감한 제도적 차이, “전문성 존중하는 구조 필요해”

대한건축사신문은 해외에서 활동 중인 한국 건축인들의 경험을 조명함으로써, 국내 설계 실무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하고, 전문성 중심의 설계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정선아 건축디자이너, 뉴욕 카스텔리 디자인(사진=카스텔리 디자인)
정선아 건축디자이너, 뉴욕 카스텔리 디자인(사진=카스텔리 디자인)

뉴욕에서 활동 중인 정선아 건축디자이너는 공간을 설계할 때, 형태나 구조보다 그 안에서 어떤 관계가 생겨나고,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를 먼저 떠올린다. 한양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한 뒤 하버드 GSD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고, 지금은 뉴욕을 기반으로 건축과 조명 디자인을 함께 다루며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과 해외 양쪽에서 실무를 경험한 그녀는, 자연스럽게 두 환경의 차이를 비교하게 됐다고 말한다. 특히 설계 변경 절차, 보상 구조, 그리고 디자이너의 전문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느낀 간극은 적지 않았다. 그녀는 그런 차이를 마주하며, 프로젝트의 크기나 이름값보다 공간이 놓이는 맥락과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을 중심에 두는 설계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더욱 확고히 하게 됐다. 지금도 그녀는 행복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고민하며 건축을 이어가고 있다.


Q. 먼저, 건축디자이너로서의 간략한 이력과 함께, 어떤 계기로 해외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양대학교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GSD에서 건축 석사를 마친 뒤, 현재는 뉴욕에서 활동 중입니다. Castelli Design에서 건축과 조명 디자인을 함께 다루며 Gensler와의 협업 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한국, 네덜란드, 뉴욕의 여러 사무소에서 도시부터 인테리어에 이르는 폭넓은 스케일의 작업을 경험했습니다.

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커리어를 위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사회와 사람을 더 깊이 읽어내는 건축사가 되고자 하는 절실함에서 비롯됐습니다. 학생 시절부터 저는 멋진 건축그 자체보다는, 공간이 어떤 관계를 만들고 이용자의 행동과 경험을 어떻게 유도할 수 있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유학 전 국내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하면서, 디자인 결정 이전에 팀원들과 거의 매일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특히 공공주택 프로젝트와 박물관 프로젝트의 배치와 평면을 조율하면서, 건축이 속하게 될 사회적·물리적 맥락을 읽어내는 일의 중요성과 건축사가 그리는 선 하나하나가 지니는 책임감을 깊이 체감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운 좋게 그 프로젝트들이 모두 설계공모 당선으로 이어지는 기쁨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 과정을 통해 제가 어떤 건축사가 되고 싶은지 조금 더 분명하게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Q. 해외에서 활동하며 형성된 본인만의 디자인 철학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한국과 해외에서 공부와 실무를 병행해 오며, 저의 디자인 철학은 점진적으로 형성돼 왔습니다. 특히 학교 환경에서는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하고, 이론과 실험을 통해 설계의 본질을 깊이 사유할 수 있었기에, 철학적 기반을 단단히 다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설계를 어떤 공간을 만들 것인가보다는 그 공간 안에서 어떤 관계와 경험이 유도되는가를 먼저 묻는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간은 기능을 담는 그릇이 아니라, 경험과 관계의 가능성을 제안하는 구조라고 봤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학부 시절부터 이어져 온 고민이었고, 당시 총장상을 수상한 졸업설계 Abiogenesis에서는 자연의 생성 원리로부터 공간 구성의 단서를 얻는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하버드 GSD에서 더욱 정제됐고, 졸업설계 Raindrop Prelude에서는 구름이 생성되고 비가 내리는 자연의 순환 구조를 심리적 정화의 과정에 비유하며, 이를 건축에 어떻게 적용하고 구현할 수 있을지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습니다.

결국 제게 설계란, 자연의 생성 방식에서 출발해 사람과 공간, 환경이 어떻게 더 깊이 연결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저는 사람이 행복하게 머물 수 있는 행복의 건축을 추구해 왔습니다.

설계는 반복적이고 창의적인 노동,

정당한 보상 없이 지속 가능하지 않아

 

건축사의 권한과 책임이

제도화된 환경에서 실무 소모 줄여야



Q. 한국과 비교했을 때, 해외의 건축 제도나 실무 관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차이는 어떤 것이었나요?

해외 실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계약 구조와 역할 분담의 명확성이었습니다. 건축사의 권한, 설계 변경의 범위, 비용 산정 방식 등이 문서화된 틀 안에서 운영됐기 때문에, 실무자가 불필요하게 소모되는 일이 훨씬 적습니다.


예를 들어, 설계 변경이 발생했을 때 그에 따른 보상 구조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끊임없이 서비스를 과도하게 제공해야 하는 구조는 아니었습니다. 설계자의 노동이 제도적으로 보호받는다는 점에서, 한국 실무가 배워야 할 부분이 많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크게 와닿았던 것은 디자이너로서 존중받고 있다는 실질적인 감각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건축사라는 직업이 헌신은 많지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나 권한은 부족한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 실무에서도 건축사가 설계의 주도권을 갖기보다는 끊임없이 타협하고 양보해야 하는 위치에 서는 일이 잦았고, 그러한 경험이 반복될수록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이나 영향력이 제한된다는 느낌이 컸습니다.

반면, 해외에서는 클라이언트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당신은 이 분야의 전문가라는 인식이 기본값처럼 자리 잡고 있었고, 건축사사무소에서 제시하는 설명이나 제안이 의견이 아니라 조언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제도적인 요소뿐 아니라, 전문성에 대한 문화적 존중이 실무 관행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결과라고 느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차이는,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환경과 프로젝트 속에서 한국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건축 실험들을 마음 놓고 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용자들, 새로운 도시 맥락, 복합적인 프로그램 안에서 어떤 건축이 가능한지를 질문하고 실험하는 폭이 훨씬 넓어졌고, 그 안에서 디자인 관점 역시 보다 유연해질 수 있었습니다.

Q. 국내 건축 설계공모 제도는 때로 수십 대 1, 많게는 1001 이상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미국은 공공 건축 설계자 선정 시 가격보다 설계자의 역량을 우선 고려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QBS는 미국의 공공 프로젝트에서 널리 채택된 설계자 선정 방식으로, 설계비나 단가 경쟁보다는 전문성과 적합성(qualifications)을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제도입니다. 클라이언트가 필요 요건을 제시하면 사무소는 포트폴리오와 제안서를 통해 지원하고, 기술 역량과 유사 경험을 바탕으로 평가를 받은 뒤, 1순위 업체와 협상을 통해 설계비를 결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설계비는 최초 평가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며, 결과적으로 과도한 경쟁과 저가 낙찰을 방지하고 장기적으로 설계 품질을 보장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 QBS는 아니지만, 이와 유사한 철학이 제도 바깥에서도 실천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Met) 공공사업 및 부동산(Public Projects and Real Estate) 부문 부사장인 Jhaelen HernandezEli는 공공 문화시설 프로젝트에서 이 프로젝트에 가장 적합한 디자이너를 선정하는 데 집중하는 방식으로 일했습니다. 그는 공간의 맥락, 사용자, 프로젝트 성격에 가장 잘 맞는 건축사를 찾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들였고, 선정 이후에야 예산 협상을 진행하는 구조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QBS와 제도적 형태는 다르지만, 디자이너의 본질적 적합성을 우선하는 철학적 전제가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Q. 한국의 건축 제도나 정책 전반에서, 해외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개선 방향이나 대안을 제안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두 가지 방향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설계비 산정과 변경 절차의 체계화입니다. 설계는 반복적·지속적인 소통을 요구하는 창의 노동이며, 이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확보돼야 지속가능한 설계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둘째, 건축사의 권한과 책임을 현실화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제 짧은 국내 실무경험에서 한국건축사는 의사결정 구조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고, 책임은 과도하게 부여됩니다. 권한 있는 전문가로서 클라이언트와 대등한 파트너십을 형성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건축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지금 시대가 부지불식간에 필요로 하고 원하는 공간과 환경을 설계하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사회적 조건과 사용자 경험, 감각과 기능을 균형감 있게 통합해내는 설계를 통해, 공공성과 감성의 균형을 갖춘 공간, 즉 행복을 주는 건축을 계속해서 탐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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