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 길을 걸어갈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시선집 ‘수선화에게’ 중에서/비채/ 2015년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는 구절로 널리 알려진 이 시는 많은 변종 내지 패러디도 낳았다. 그중에 하나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구절일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프면 환자지.”하는 강력한 안티도 있다. 하나의 시구절을 두고 이런저런 변종이 생기는 것은 사뭇 흥미로운 일이다. 이 흥미는 원작의 열린 구조 때문일까? 아니면 닫힌 구조 때문일까? 정호승의 시는 그 문장이 확정적이다. ‘p→q’라는 논리 형식에 가까운 문장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저 논리형식을 벗어난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부정될 수 있다. 그러나 정호승의 시가 그렇게 널리 회자되는 것은 그의 논리형식이 건드리는 부분이 감성의 영역에 정확히 가 닿기 때문이다. 정호승의 시는 그것에 한해서 옳다.
함성호 시인
haamx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