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장마

- 정끝별

새파란 마음에 
구멍이 뚫린다는 것 
잠기고 뒤집힌다는 것 
눈물 바다가 된다는 것 
둥둥 
뿌리 뽑힌다는 것 
사태지고 두절된다는 것 
물벼락 고기들이 창궐한다는 것 
어린 낙과들이 
바닥을 친다는 것 

 때로 사랑에 가까워진다는 것 
울면, 쏟아질까?

 

- 정끝별 시집 ‘삼천갑자 복사빛’ 중에서/ 민음사/ 2005년

휠체어에 의지해 집안을 다니시는 어머니는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항상 구르마(휠체어)에 앉아 창밖을 보는 게 일과의 대부분이고 낙이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온다”라고 할 때가 있는데 그래서 밖을 보면 짱짱한 하늘이다. 요즘은 남녀노소 공히 핸드폰에 얼굴을 파묻고 다니고, 또 맑은 날에도 우산을 쓰고 다녀서 생기는 착각이다. 사미르라는 프랑스 만화가는 한국사람을 단 한 줌의 햇빛도, 단 한 방울의 비도 맞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아마도 호된 폭염, 호된 폭우, 호된 추위에 당한 사람들이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가슴 쓸 듯이 생긴 습성일 것이다. 이번 장마는 아무 인명사고 없이 무사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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