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
- 여성민
이별한 후에는 뭘 할까 두부를 먹을까
숙희가 말했다
내 방에서 잤고 우리는 많이 사랑했다
신비로움에 대해 말해 봐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숙희는 말했다
눈이 내렸을까 모르겠다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른다
두부 속에 눈이 멈춘 풍경이 있다고
두부 한 모에 예배당이 하나라고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야
집에 두부가 없는 아침에 우리는 이별했다
숙희도 두부를 먹었을까 나는 두부를 먹었다
몸 깊은 곳으로
소복소복 무너지는
이별은 다 두부 같은 이별이었다
예배당 종소리 들으려고
멈춘 풍경이 많았던
사람이 죽을 때
눈이 몰려가느라 몸이 하얗다면
죽어서도 두부 속을 걷는 사랑이라면
눈이 가득한 사람아 눈이 멈춘 눈사람 예배당
종소리 퍼지는 지극히 아름다운 눈사람아
그러나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르고
두부는 생으로 썰어 볶은 김치와 먹어도 좋고
된장 조금 풀어서
끓여내는 이별
- 여성민 시집 ‘이별의 수비수들’ 중에서/ 문학동네/ 2024년
차원(dimension)을 설명하는 많은 방법 중에 책에 대한 예가 있다. 2차원이 단순히 종이와 글씨라면 3차원은 시간이 개입하며 이야기를 구성한다.(시간의 축이 들어오면 이미 4차원 시공간이지만 여기선 제외하자) 4차원은 우리가 읽다가 끝이 궁금해서 뒷장을 볼 수도 있고 다시 앞으로도 자유롭게 넘어갈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시는 차원을 넘나 든다. “두부 속에 눈이 멈춘 풍경”은 “두부 한 모”의 ‘예배당’인 동시에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다". 여기, 저기, 이것, 저것, 이때와 저 때가 같이 있다. 이별은 그런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