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완연한 봄이다. 꽃이 피고, 나무는 푸르름을 되찾는다. 사람들의 옷차림은 가벼워지고, 마음에도 봄기운이 스민다. 하지만 우리 건축설계 시장은 여전히 겨울의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다. 수요는 줄고, 경쟁은 날카로워졌으며, 많은 건축사들이 고요한 사무실에서 오늘도 묵묵히 버텨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런 침묵의 시간 끝에는, 늘 새로운 변화가 싹튼다는 것을.
지금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건축사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때다. 건축은 더 이상 단순히 ‘공간을 설계하는 일’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을 고려하고, 기술과 융합하며, 사회와 소통하는 복합적이고 통합적인 작업이다.
기후 위기와 에너지 문제, 인구 변화와 커뮤니티의 해체, 건축의 안전 및 품질 등의 문제들에는 모두 건축사의 안목과 책임을 요구한다. 미래의 건축사는 그 모든 변화의 언어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공간으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 역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AI, BIM 등의 디지털 도구는 단순한 설계 효율을 넘어서, 건축사의 사고방식마저 바꾸고 있다. 반복을 줄이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기술은 도구일 뿐이다.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민감하게 느끼고, 더 깊이 통찰하며, 더 넓게 연결할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 감각과 상상, 관계를 읽는 눈이 한층 진보한 건축사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건축사는 단순한 디자이너가 아니라, 문제를 읽고 해법을 제시하는 공간 전략가이며, 때로는 공동체의 상처를 감싸는 치유자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건축의 본질은 오히려 선명해진다. 사람을 위한 공간, 삶을 담는 구조.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는 배경이다. 햇살이 머무는 창가와 아이의 발소리가 울리는 복도, 그리고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공간 등, 이 모든 것들이 진짜 건축의 얼굴이다.
혹자는 ‘당신은 어떤 건축사가 될 것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이 질문 앞에 멈추지 않고, 조금 더 나아가야 한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설계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상상을 그려야 한다. 그 상상이 모여 도시가 되고, 도시가 모여 또 다른 삶을 만든다.
봄이 왔지만, 우리의 현실은 아직 춥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언젠가 다시 기회가 피어오를 것이고, 그때 우리가 한층 더 진보한 건축사로 서 있을 수 있다면, 이 고요한 시간도 헛되지 않을 것임을. 따뜻한 봄날은 결국, 준비된 이들에게 먼저 온다. 그 봄이 동료 건축사 여러분의 마음에도 꼭 찾아오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