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대는 부산을 대표하는 암석해안 명승지이다.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100m 높이의 해안 절벽이 있으며, 태종대의 남쪽 해안은 영도 등대 아래에 발달한 융기 파식대(隆起 波蝕帶)인 신선암, 북쪽 해안은 태종암이다. 신선암은 태종대를 대표하는 명소로 약 12만 년 전인 신생대 제4기 최종 간빙기에 생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곳곳에 왕성한 해안 침식에 의한 해식 동굴, 해안 절벽 등 아름다운 지형이 형성되어 있다. 울창한 해송이 기암절벽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남부 지역의 임상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곰솔을 비롯해 후박나무, 동백나무 등의 난대성 활엽수림이 발달해 있다. 그 외에 200여 종의 상록성 수목들이 주요 구성 종(種)을 이루고 있다.
태종대의 유래
태종대의 이름에 관한 전설은 두 가지가 전한다. 먼저 동래 부지에 신라 제29대 태종 무열왕이 이곳에 와서 활을 쏴 태종대라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선의 태종이 1419년 큰 가뭄이 들자 그해 5월 하늘에 빌어 비가 내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는데, 그로부터 음력 5월 초에 내리는 비를 ‘태종우(太宗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이후로 동래 부사도 태종을 본받아 가뭄이 들 때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렸는데, 그래서 태종대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태종대의 주요 모티프는 ‘태종대 명칭의 내력’, ‘망부석 전설’ 등이다. 절개 굳은 아내가 외지에 나간 남편을 고개나 산마루에서 기다리다가 만나지 못하고 죽어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 전설은 한국의 여러 지방에 전하고 있다.
암석해안의 명승지
부산 영도 태종대는 부산 대교를 지나 영도 해안을 따라 9.1㎞의 최남단에 있으며, 약 164만㎡의 면적에 해발 250m의 최고봉을 중심으로 해송을 비롯한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태종대에서는 오륙도가 가깝게 보이고, 맑은 날씨에는 56㎞ 거리에 자리 잡은 대마도(對馬島)가 해상의 흑점(黑點)처럼 희미하게 보이기도 한다. 조선 후기에 일본에 파견되었던 조선통신사들이 대마도로 가다가 태종대를 보고 슬퍼하거나 각오를 다지기도 했으며, 반대로 조선으로 돌아오는 길에 태종대를 보고 고국에 다 왔다며 좋아했다는 기록이 여럿 남아 있다. 굳이 대마도가 아니더라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바다의 전경은 일품이다.
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영도 등대가 섬 남동부의 가파른 해안 절벽 위에 서 있다. 등대 오른편 아래쪽에는 신선 바위가 있고, 바위 위에 망부석(望夫石)이 외로이 서 있다. 순환 관광로의 중간 지점인 전망대에는 모자상(母子像)이 있다.
영도등대에서 계단을 지나 동쪽으로 내려가면 모래는 쓸려 가고 자갈이 파도에 동글동글해진 역빈(현생 자갈 마당), 약한 암석이 파도에 깎인 해식 동굴도 있다. 다양한 지질 환경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도록 코스를 개발해서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그 밖에 인공 해수(海水) 풀장인 ‘곤포(昆布)의 집’을 비롯한 위락 시설과 바다 낚시터 등이 있으며 너비 10m, 길이 4㎞가량의 순환 관광로가 섬의 명소들을 누비며 지나간다. 다누비 관광열차를 이용하여 태종대를 코스별로 관람할 수 있는데 코스별 승하차가 가능하여 곳곳의 명소들을 여유 있게 관람할 수 있다.
태종대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일본군 요새로 사용되며 일반 시민의 출입이 제한되어 오다가 지난 1967년 건설교통부가 유원지로 고시하였고 뒤이어 1969년에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이후 1972년 6월 ‘부산광역시 시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가 2005년 11월 ‘명승 제17호’로 다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문화재청 고시로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명승으로 재지정되었다.
출처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태종대 주차장 주소 : 부산광역시 영도구 태종로833번길 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