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아파트 입주민에게 해당 아파트의 설계자를 아느냐고 물으면, 특정 사례를 제외하곤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계자를 건설사의 브랜드로 착각하거나, 외관 특화 설계에 참여한 해외 건축사를 주설계자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아파트도 건축사가 설계하는 건축물임에도, 건축사의 이름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건설사 브랜드만 강조되는 현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아파트가 부동산으로서의 가치에 집중돼 온 결과, 대형 건설사는 브랜드를 앞세워 이미지를 구축했고, 실질적인 자산 가치를 통해 브랜드 가치를 지속해 온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파트 설계는 건축사의 의도보다 건설사의 계획에 따라 주동 배치, 외부 공간, 외관, 세대 평면 등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건축사는 드러나지 않고 건설사의 브랜드만 강조되는 현상이 당연시되고 있다. 또한 단독주택이나 소규모 공동주택과 달리,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한 명의 건축사가 설계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도 계속되어 왔다. 업무가 소수에게 집중돼 해마다 수천 세대를 설계하는 현실은, 주거 환경에 대한 세심한 접근을 어렵게 하며 더 많은 건축사가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제안으로 이어진다.

GH가 이번에 시도하는 동별 외관 설계 방식은 여러 건축사의 참여를 통해, 다양성을 각 건축사가 고유의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기존의 아파트가 부동산으로서의 가치 위주로 판단되었다면, 이러한 방식으로 설계된 아파트는 좀 더 건축으로서의 가치를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건축사 업무가 조금 더 인정받고 설계자가 기억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해외의 유명한 건축사의 디자인 참여를 통해 아파트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광고 효과를 꾀하는 것보다, 신진 건축사, 여성 건축사, 창업 건축사를 참여하도록 하는 규정도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이 명품을 선택하는 이유는 알지만, 숨겨진 보물을 찾아 갈고닦으며 알아봐 주다 보면 명품이 될 수 있는데, 공공에서 이러한 제도를 시행한 것이 훌륭한 국내 브랜드를 찾아내 명품이 되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제도는 건축사사무소의 구조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영이 될 수 있다고 보인다. 새롭게 건축사를 취득한 많은 신진 건축사들이 건축사보 없이 1인 사무실 체계로 개업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신진 건축사, 창업 건축사들에게는 동별로 외관 설계를 진행할 수 있다면, 과거에 한 명의 이름으로 진행하던 일을 분담할 수 있게 되어 기회가 확대된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변화 시도가 더 좋은 주거 환경을 만들고 사용자들을 만족시키며, 건축이 작품으로 인지되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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