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너무 빨리 와 버렸다. 건축 상담을 진행하던 건축주가 메신저를 보내 왔다. ChatGPT 에 주차 방식에 대해 물어봤는데 계획안에도 그 답변이 반영됐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AI의 답변이 터무니없다는 건 차치하고, 내 역할이 AI 가 제시한 내용을 그대로 실행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건축주를 만날 때마다 AI의 제안은 불가능한 방식이라고 수차례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건축주는 건축사보다 AI를 더 신뢰하기로 결정한 듯싶었다. 그런 태도를 보면서 건축주가 AI와 설계를 하고, 건축사는 그것을 단순히 구현하는 도구가 돼 가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병원에서도 유튜브에서 본 치료법을 요구하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스스로 진단하고 처방까지 내리는 환자의 증가가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축도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온라인에서 본 좋은 것들만 짜깁기해 그대로 지어 달라는 건축주는 이제 익숙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AI 의 답변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적용해 달라는 건축주까지 등장했다. AI가 건축을 대신하는 시대가 올 거라는 이야기는 익숙하지만, 그 변화가 이렇게 빠르게 현실이 될 줄은 몰랐다. 앞으로 설계공모에서도 AI가 생성한 도면이 경쟁에 참여하고, 건축주들이 AI가 제안한 방식을 신뢰하는 일이 점차 늘어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건축사는 이제 설계를 주도하는 존재가 아니라, AI가 제안한 내용을 조정하고 실행하는 역할로 축소될 가능성이 있는 걸까? 건축사의 전문성은 어디에서 빛을 발할 수 있을까?
건축사의 역할은 단순히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맥락을 읽고, 사람과 환경을 조화롭게 연결하는 데 있다. 하지만 빠르고 간결한 AI의 답변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어 가는 상황에서 건축사의 경험과 직관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다. 이제 건축사는 AI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도구로 삼아 더 창의적인 해법을 제시해야 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건축의 본질과 가치를 잃지 않는 것. AI가 주도하는 시대일수록, 인간 건축사의 역할이 더욱 의미 있어야 한다.
이제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AI를 도구로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에 자리를 내어 줄 것인가? 건축사의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