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통과 쾌락이 객관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특정 자극이나 상태가 고통이나 쾌락을 결정하는 것이고 우리의 주관적 인식은 이와 무관하다는 생각이다. 실생활에서 바늘로 피부를 찌르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객관적 상황이 고통을 결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통념을 깨는 연구 결과가 있다. 중독 현상을 다룬 ‘도파민네이션’이란 책에 소개된 군의관 헨리 놀스 비치의 연구도 이 가운데 하나다. 이 군의관은 전쟁에서 중상을 입은 225명의 군인을 관찰했다. 생명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군인만을 대상으로 연구했다. 비치는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엄청난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연구 대상이 된 군인의 4분의 3은 부상 직후 고통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치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 이유는 병사들의 주관적 인식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부상을 당하는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전쟁터에서 벗어나 안전하고 편안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는 안도감이 고통을 완화했을 것이란 분석이다.
정반대의 사례도 책에 등장한다. 1995년 ‘영국의학저널’에 실린 한 건설노동자의 사례다. 이 노동자는 15㎝ 길이의 못을 밟았는데, 못이 발을 관통해 신발 위로 뚫고 나오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의료진이 못을 움직이면서 빼려 하자 이 노동자는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의료진은 강력한 통증 완화제를 처방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발을 벗겨보니 못이 발가락 사이 공간으로 절묘하게 피해 갔다. 즉 발에 어떤 상처도 없었다.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렇게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인식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는 최근 경제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 역시 큰 차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극도로 높아졌고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등으로 수많은 기업과 경제 주체들이 어려운 상황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인식은 우리의 대응 방식과 웰빙까지 결정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양면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당장 수출 감소와 무역 전쟁 격화로 인한 전 세계적인 경기침체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런 시나리오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 고통이란 관점에서 상황을 인식하고 대응할 수도 있다.
긍정적 측면도 동시에 존재한다. 많은 한국 기업들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은 인건비가 싼데다 딥시크 쇼크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수 산업 분야에서의 기술력도 한국보다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의 궁극적 목적은 중국 견제라는 데 많은 전문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시간을 벌어주고, 중국 견제로 인한 공급망의 구멍을 메워주는 분야에서의 신시장 창출 기회를 제공한다.
쾌락에 대가가 따르는 것처럼 고통에도 대가가 있다. 부정적 상황이 가져다주는 기회 요인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적응하며 새로운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