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민 건축사·(주)건축사사무소 폼아키텍츠(사진=주.건축사사무소 폼아키텍츠)
김혜민 건축사·(주)건축사사무소 폼아키텍츠(사진=주.건축사사무소 폼아키텍츠)

공공건축 설계공모 진행에 앞서, 심사위원, 담당 공무원 및 실무자가 참여해 공모의 취지와 방향성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볼 수 있는 설계공모 사전 토론제(이하 사전 토론제)를 제안한다.

공공건축은 국가의 건축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이자, 새로운 시대의 표상을 제안할 수 있는 창구이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공공건축이 기대되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공공건축 설계공모의 심사 과정이 가지고 있는 폐단과 한계,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로 시대적 과업과 가치를 담은 공공건축물을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공공건축의 사회적 중요성과 역할에 대한 담론이 없기에, 심사의 과정 또한 그만큼 가치 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에 현 설계공모 제도의 몇 가지 구체적인 문제점을 토대로, 지금 제안하는 사전 토론제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심사위원 적합성 문제
현 설계공모 간 심사위원 선정의 핵심 문제점은, 개별 심사위원의 능력과 자질의 부족함 그 자체가 아니라 각 심사위원이 해당 공모에 대한 적합한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판별할 수 있는 과정이 부재하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전 토론제를 도입하면, 형식적인 지침이 아닌 보다 명확한 어젠다를 가지고 당선안의 방향성에 대한 기준을 심사위원 측에서 논의해 제시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개별 심사위원의 관점, 기준, 역량을 자연스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참여자 또한 심사위원의 성향, 출신, 소속을 고려하는 대신 심사 측이 제시하는 어젠다와 비전을 토대로 계획안을 제시할 수 있다.

2. 실무자의 참여
지역에 대한 실정이나 시설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해당 시설을 앞으로 운영하거나 관리하는 주체의 참여가 필요하다. 현 설계공모 심사 과정에서는 해당 시설 운영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공무원이나 실무자의 관여가 부재하거나 제한적인 참여 형태로 이뤄진다. 또한 본 심사 과정에 참여한다 하더라도 건축 전문성에 대한 논쟁 여지가 생긴다. 사전 토론제를 도입하면, 공간 구성 및 운영에 대한 전체적인 방향성에서부터 세부적인(그럼에도 중요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실무자의 경험과 의견을 청취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는 참여 건축사가 보다 좋은 공간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소중한 자료가 된다.

공공건축의 가치를 더하기 위한 제안

심사 이전, 함께 논의하는 사전 토론제가 필요하다


3. 규모, 지역의 문제
지역과 규모에 상관없이 사전 토론제를 실시해야 한다. 아니, 오히려 작은 규모의 건축, 소규모 권역의 공공건축일수록 사전 토론제를 적용해야 한다. 규모가 작을수록 공모 심사 지침의 체계성이 소홀해지기 쉬운데, 적은 규모의 건축일수록 시설을 이용하는 이용자가 보다 명확히 특정되기 쉽다. 이는 지역의 특성과 그 시설의 개별 이용자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동반돼야 지역 내에서 잘 작동하는 공공건축이 된다는 뜻이다. 서울시청과 같은 시설이 범용성을 보다 중시한다면, 소규모 공공건축은 지역 특수성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사위원 선정의 취약성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사전 토론제의 보편적 시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

마지막으로, 본 제안의 핵심은 공공건축 담론의 형성이다. 건축사와 건축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한국의 공공건축에 대한 담론을 지속적으로 생성해 나간다면, 한국 공공건축에 대한 인식의 연대가 생긴다고 판단한다. 이것이 선행되면 공공건축 심사는 이를 따라가게 된다. 이 인식의 연대를 토대로 공모 심사에 임하는 심사위원들이 각 공모 심사와 관련된 토론을 할 기회를 가진다면, 명확한 어젠다를 토대로 수준 높은 공공건축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다. 그 바탕 위에서 설계공모에 참여하는 각 건축사가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다면, 한국 공공건축, 나아가 한국 건축의 수준과 위상을 크게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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