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모토로 제주에 만들어진 공유 주거 공간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배치의 2층 단독주택
다섯 건축주 생활 방식과 취향 잘 녹여내

해마다 전국 각 지역에서는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당시 건축 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지금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2024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 미로헌’(양수민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무이원)이다.

2024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 ‘미로헌’(설계=양수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무이원, 사진=Texture on texture)
2024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 ‘미로헌’(설계=양수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무이원, 사진=Texture on texture)

개인적 인연으로 인해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공동체 주거 공간 용두동집’(임진우 건축사,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을 준공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동네극장, 주방, 작은 서재, 서점, 그리고 동네 아이들이 방과 후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공부방까지.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서울 시내 한가운데서 전체 공간의 3분의 1을 공유하는 주거용 건축물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런 공간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24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 ‘미로헌’(설계=양수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무이원, 사진=Texture on texture)
2024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 ‘미로헌’(설계=양수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무이원, 사진=Texture on texture)

2024년 제주건축문화상 본상 수상작 미로헌’(양수민 건축사, 건축사사무소 무이원)6년 전의 용두동집을 떠올리게 하는 건축물이었다. 조금 더 넓은 공간에 제주의 풍광까지 어우러졌다는 점이 미로헌의 특징이다. 건축주 5명이 의기투합해 따로 또 같이의 일상을 살아갈 공간을 만들기로 하면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함께 사는 공간의 본질에 대한 설계자 양수민 건축사의 고민을 거쳐 완성됐다.

양수민 건축사는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듯, 대지 안에 건축주 5명 각자의 생활 방식과 취향, 필요로 하는 공간의 크기와 기능을 조화롭게 녹여냈다. 독립 공간과 공유 공간은 마치 천의무봉(天衣無縫)’이라는 말처럼 자연스럽고 유기적으로 이어지며, 다시 하나의 커다란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2024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 ‘미로헌’(설계=양수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무이원, 사진=Texture on texture)
2024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 수상작 ‘미로헌’(설계=양수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무이원, 사진=Texture on texture)

ㅁ자 배치의 2층 단독주택 미로헌은 각자의 삶과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함께의 가치를 위해 조율해 나간 과정에서 만들어진,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설계자 양수민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양수민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양수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무이원(사진=건축사사무소 무이원)
양수민 건축사·건축사사무소 무이원(사진=건축사사무소 무이원)

Q. ‘미로헌을 설계하게 된 계기와, 설계 과정에서 특히 중점을 두신 부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미로헌5명의 건축주가 따로 또 같이라는 주제로 제주에 집을 구상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설계를 맡게 되면서, 단독주택이라는 건축적 틀 안에 여러 사람의 삶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제주의 전통적 건축 요소를 따르기보다는,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의 본질을 탐색하고, 공유와 독립이 공존하는 새로운 주거 방식을 제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였습니다.


Q. 앞서 말씀하신 점들을 실제 공간에 어떻게 구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미로헌은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 배치된 2층 단독주택입니다. 이 마당은 단순한 외부 공간이 아니라, 공유하는 삶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개인 공간과 공유 공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집의 중심에는 주방 겸 식당(공유 공간)이 자리잡고 있으며, 현관 기능도 함께해 사람들이 집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스럽게 마주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2층에 배치된 공유 거실(살롱)은 이 집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으로, 3면이 외부와 접해 있어 개방감을 주면서도 남측 테라스와 다락 매스가 감싸듯 배치돼 외부 시선으로부터는 자유로운 내밀한 공간이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이곳에서는 한라산 전망을 어디에서나 조망할 수 있으며, 복도와 한지문을 통해 개인 공간과도 부드럽게 연결됩니다. 개인 공간은 각자의 방식으로 여닫을 수 있도록 설계해, 필요에 따라 독립적인 공간으로 사용하거나 공동체와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5명의 건축주가 함께 살아가는 집이라는 점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습니다. 각자의 생활 방식과 취향, 필요로 하는 공간의 크기와 기능이 모두 달랐기 때문에, 개별적인 요구를 하나의 조화로운 형태로 담아내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각자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공유하는 삶을 위해 서로 조율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한 것은 매우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공간은 단순한 물리적 구조가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이 쌓이며 비로소 의미가 형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도시의 공공공간을 설계할 때는 그 장소만의 공간적 특성을 담고, 사람들에게 공유된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정서적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반영하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하며, 공간이 삶을 담아내고 삶 또한 공간을 통해 변화할 수 있도록, 건축적 다양성과 유연함을 갖추기 위해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Q. 그 지향점을 이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프로젝트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공간적으로 실현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의 주택 유형에서 벗어나, 공유와 독립의 균형을 맞춘 새로운 주거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마당을 중심으로 한 독립 공간의 배치, 개방적이면서도 내밀한 공유 공간,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공간 구조는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삶의 태도를 반영한 결과입니다.

Q. 이번 수상이 건축사님에게 어떤 의미인지요?
미로헌은 함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담긴 집이며, 설계 과정 자체가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수상은 이러한 설계 방식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더욱 뜻깊게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삶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을 고민하며, 더욱 깊이 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Q.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공존할 때, 그 사이의 연속성을 찾아가는 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특히 한옥이나 적산가옥과 같은 중목구조의 집에서는 기존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구조와 재료의 결합을 조화롭게 드러내는 방법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한옥의 보존과 현대적 활용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한옥이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의 삶에 적합한 주거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그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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