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칼럼에서 건축사님들이 설계계약을 체결할 때 설계보수 청구권을 잘 보장할 수 있도록 명시해야 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건축설계 계약이 건설공사 도급계약이나 공사감리 계약과 달리 전자의 도급계약의 성격과 후자의 위임계약의 성격 모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법원 실무에서는 건축물 설계계약은 설계도서를 완성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도급계약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나, 이에 그치지 않고 건축사가 재량의 범위 내에서 일을 하는 점에서 위임계약의 성질을 가진다는 소위 ‘혼합형 계약’이라고 보고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5. 16. 선고 2016가합554872 판결 등).
결론적으로 설계자의 입장에서는 설계계약의 법적 성질과 관련하여 위임이 아닌 도급계약의 성질을 가진 계약 조항을 삽입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래야만 원칙적으로 무상계약, 즉 공짜 계약인 위임계약에서 벗어나 도급계약으로서의 설계자의 보수 청구권이 확보될 수 있는 것이다. 즉 건설공사 계약의 경우처럼 전형적인 민법상 ‘도급계약’의 경우에는 일을 완성시켜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대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본질로 하는 민법상의 계약이므로, 일의 완성을 하지 못하면 그 대가를 받을 수 없게 되는 데 반하여, 위임계약은 당사자 사이에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승낙하면 성립하는 것으로 보수 청구권을 의무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건축사가 설계용역을 계약서 체결 없이 기획업무 및 계획설계를 해주었다면, 도급계약인 건설공사와 달리 설계계약은 혼합적 성질을 가지게 되어, 만일 위임계약으로 해석돼 버리면 건축사가 일정한 행위를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설계 부분에 대하여 보수 청구를 할 수 없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먼저 도급계약(민법 제644조)의 성질을 가진 설계계약의 경우에는 그 주된 요소가 일의 완성과 보수 청구가 필수적 요소이고, 이를 전제로 하여 수급인인 건축사에게 하자 보수와 손해배상을 내용으로 하는 하자 담보 책임이 있고(민법 제670조에서는 일의 완성을 기준으로 1년이다), 건축사의 설계 행위에 대하여 잘못된 채무불이행 사유 등 해지 사유가 없다면 건축주가 해지할 수 없고, 만일 해지한다면 손해배상의 책임이 있으며, 건축사의 잘못이 없는 상태에서 설계계약의 완성 전에 건축주가 해지를 한다면 건축사가 본 설계계약으로 인하여 받을 수 있는 이익까지 모두 청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민법 제673조). 참고로 민법은 제673조(완성 전의 도급인의 해제권)에서 “수급인이 일을 완성하기 전에는 도급인은 손해를 배상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설계계약이 위임계약이 되어버리는 경우, 민법은 도급계약과 달리 보수 청구권이 없는 것이 원칙이고, 또한 설계자인 위임의 상대방인 수임인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부담하고(민법 제681조), 또한 잘못한 경우 상행위로서 5년 동안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까지 질 수 있으며, 수임인은 특별한 약정이 있어야만 보수 청구가 가능하고(민법 제686조 제1항), 또한 보수 약정을 하였다는 것을 전제로만 중도 해지 시 이미 처리한 사무의 비율에 따른 약정 보수 청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민법 제686조 제3항). 특히 위임계약의 경우에는 언제든지 상호 해지의 자유가 있어서(민법 제689조), 특별히 불리한 시기에 해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 이 부분이 설계자의 책임이 없이 건축주의 중도 타절 시 이행이익까지 배상 책임을 지는 도급계약과 다른 것이다.
건축설계계약,도급계약 내용으로 작성해야 유리
보수청구권 명시, 계약서 핵심 사항
‘설계자 잘못없이는 임의해제 할 수 없고,
임의 해지 하는 경우 이행이익 손해배상 하는 조항’ 반드시 넣어야
어려우면 “자세한 사항은 민법상 도급계약 내용
적용하기로 한다”고 약정해야
그렇다면 도급계약이라는 근간을 전제로 하여 건축사님들의 입장에서 설계계약에 어떠한 세부적인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설계계약서에는 반드시 일의 내용에 따른 설계 보수를 정하여야 한다(설계 보수와 지급 시기 등 보수 청구권에 대한 내용을 명확히 명시할 것). 둘째, 설계계약이 설계자의 책임 없이 건축주가 중도 해지를 하는 경우, 이미 처리한 사무 비율에 따른 약정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반드시 넣어야 할 것이다(민법 제686조 제3항). 셋째, 설계의 하자가 있을 때 민법 제670조에 따라서 설계계약 종료 시부터 1년 동안 하자 담보 책임을 부담한다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 (이 부분이 피상적으로 보면 설계자의 책임을 부담하게 하는 요소로 보일 수 있으나, ‘1년간의 하자 담보 책임을 부담한다’는 문구가 있어서 도급계약의 요소를 가지게 될 수 있어 결과적으로 설계자에게 유리해지는 것이다). 넷째, 천재지변이나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의 잘못(귀책사유) 없이는 설계계약을 상호 해지할 수 없다는 내용을 삽입하여야 한다. 다섯째, 만일 도급인(건축주)가 수급인(설계자)의 잘못 없이 계약을 해제하는 경우, 민법 제673조를 적용한다는 내용을 적어야 한다(즉, 이 부분이 어떠한 사유이든 건축주의 중간의 변심으로 설계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설계자의 이행 이익에 대하여 배상하는 근거가 된다).
만일 이와 같이 자세한 내용의 삽입이 어렵다면, 설계 보수 내용을 자세히 정함과 동시에 한 줄로 “자세한 사항은 민법상 도급계약의 내용을 적용하기로 한다”라는 문구라도 기재해야 한다.
실무상 분쟁 사례를 보면, 특히 건축주가 도시정비사업이나 지역주택조합 등 재건축·재개발 조합의 경우에 추진위원회부터 조합 설립까지 여러 단계와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는데, 이 경우 초기에 설계계약이 이루어진 경우 당초 계약했던 집행부와 반대측이 임원이 되는 경우 기존의 설계계약을 무효로 하고 해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더욱 주의를 요한다. 실무 사례로는 재개발 조합 측의 일방적인 설계계약 해지로 인하여 재개발 조합에 대하여 기성고 설계 대금 및 이행 이익(*이행 이익: 설계 업무를 완성하였더라면 얻었을 이익을 의미)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례가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18. 5. 16. 선고 2016가합554872 판결]).
건축사님들의 권리 보장의 시작은 스스로의 적극적인 계약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