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 송경동
어느 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 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 송경동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중에서/ 창비/ 2009년
우리의 노동시는 관념과 상징을 통해 해방을 노래하다가 박노해와 백무산을 만나면서 그 육체를 입게 된다. 그때에야 비로서 한국의 노동시에는 미싱 돌아가는 소리. 망치로 쇠를 때리는 소리, 모터 소리 같은 현장의 소리들이 등장한다. 송경동의 시는 그런 맥락에서 조금 떨어져 나와 그 소리들을 옹호한다. 그는 노동자다. <구로노동자문학회> 출신(?)이고 ‘희망버스’를 기획해서 집회와 시위의 다른 형태를 만든 기획자다. 그의 소속은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이다.
- 기자명 함성호 시인
- 입력 2025.03.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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