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들

- 이명우

계약 만료 통보를 주자 
그녀의 입에서 칼이 나온다
그녀는 방문을 밀치고 들어와 
자기랑 나이트클럽에 가자고 했다는 소문을 내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 소리에 공기가 깜짝 놀랐는지 책상 위 서양란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도 놀라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녀의 입에서 계속 나쁜 공기들이 나오고
그 속에 크고 작은 칼들이 숨어 있다.
숨어 있던 바람이 맞아 맞장구친다.

여직원들이 방을 노크할 때마다 숨을 곳이 보이지 않는다.
칼을 숨긴 바람들이 와작와작
그의 가슴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녀와 잠을 잤을지도 몰라.

사무실에 소문이 둥둥 떠다니고 금방 소나기가 쏟아질 것 같다. 
습기가 차올라도 빗방울 하나 보이지 않는다.
긴장된 공기가 팽팽하게 방을 채우고 있다.
소문은 점점 무성해진다.
맞아, 설마, 아니라니까,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럴 수 있나. 그녀가 녹음한 것 들어봤잖아. 꼼짝 못 하잖아. 그런 것을 보면 분명해!
그러나 
소문은 입만 있고 몸은 없고


- 이명우 시집 ‘관리소장’ 중에서 /파란 / 2025년
‘소문(所聞)’은 글자 그대로 ‘들은 내용’이라는 뜻이다. 자기가 겪은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을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말이다. 이 말은 나중에 속되게 ‘카더라’ 혹은 ‘카더라 통신’이라는 말로 비하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예 ‘가짜 뉴스’가 되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에는 분명 시인의 통찰처럼 소문에는 몸이 없기 때문 일 것이다. 광고 중에서 제일 효과적인 것이 입소문이고, 치명적이기로는 악성 댓글이나 가짜 뉴스만 한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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