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비 수십 년 제자리, 인건비 상승…건축사사무소 운영난 가중
공사비 예측 어려움 가중…건축 품질·시공 안정성도 흔들려
업계 “민간 대가 기준·가이드라인 마련 시급” 한목소리
건축 설계비가 수십 년간 거의 변동 없이 유지되는 가운데, 인건비와 장비 비용, 임대료는 급격히 상승하며, 설계를 본업으로 하는 건축사사무소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설계 대가 기준이 부재한 상황에서 설계 성과물의 품질 저하와 공사비 예측의 불확실성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건설업 종사자의 평균 임금은 2022년 5.5%, 2023년 6.7% 상승했으며, 최저임금도 2000년 대비 2024년 6배 이상 인상됐다. 또한,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100에서 2023년 127.90까지 상승, 2024년 11월 기준으로 130.26을 기록하며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설계비는 공사비의 2∼3% 수준에서 수십 년간 정체, 프랑스(8%), 독일(10%) 등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설계 대가 기준이 사라지고 설계도서 제출 의무에 대한 목록과 기준이 삭제 또는 완화되면서 설계 성과물의 내용은 빈약해지기 마련이다. A 건축사무소 대표는 “설계비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인건비는 최소 3∼4배 이상 오르고, 사무실 임대료나 장비 유지비도 꾸준히 증가하며 사무소 운영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이러한 현실에서는 설계의 질적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여기에 타 법 제정으로 인해 협력 분야의 부가 서비스나 각종 인증 업무가 별도 대가를 받는 사례가 증가했으며, 민간시장에서는 설계 성과에 대한 견적 업무가 배제되는 것이 일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B 건축사는 “최근 민간 프로젝트에서는 도면 작성 외에도 각종 인증 절차나 컨설팅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가는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설계 업무가 점점 포괄적으로 확장되는 반면, 정당한 보상은 미흡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사비 산출을 위해서는 설계예가가 필수적이나, 건축주의 인식 부족과 시공 과정에서 이를 고려하지 않는 관행으로 인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소한의 수량이라도 산출해야 적정 공사비를 바탕으로 시공업체를 선정할 수 있으며, 변경 업무 역시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 C 시공사 관계자는 “설계도면이 상세하지 않으면 시공 과정에서 공사비가 예상보다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며 “설계 단계에서 공사비를 보다 정밀하게 산출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테일의 실종도 이런 맥락이다. 설계 도면이 간소화되고, 세부적인 시공 지침이 반영되지 않으면서 시공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사례가 늘기 마련이다. 공사 현장에서 즉흥적인 의사결정이 많아지고, 예상치 못한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디테일이 부족하고 수량 및 공사비 견적이 반영되지 않으면 공사비 변동 폭이 10∼20%에 달할 수 있으며, 이는 설계비 절감으로 기대했던 비용 절감 효과보다 더 큰 추가 지출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설계비 절감으로 인한 공사비 증가 부담이 예상보다 훨씬 커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에 따라 건축사 업무대가 정상화를 위한 민간 대가 기준 또는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높다. 후속 조치로 설계도서의 성과 수준과 목록을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건축주가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합리적인 대가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 제기되고 있다. D 건축업계 관계자는 “설계비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공사비 예측이 어렵고, 그로 인해 건축주도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며 “공사비 안정성과 건축 품질 확보를 위해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