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자 문제 제기할 경우 시행사가 감리업체 전체 교체 사례도
감리에게 공사 중단 권한 있지만 행사 시 손해배상 소송 위험 높아
부실 시공 발생 시 시공·시행사는 감리자 희생양 삼아 책임 회피
“제도 개선 없이 감리 책임만 강화하면 역할 더욱 위축”
건설 현장에서 부실 시공을 방지하기 위해 감리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현재 시스템은 감리가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운 한계를 지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리의 독립성·전문성이 보장되지 않는 환경에서 시공사·시행사의 압박 등으로 인해 감리 업무가 원활하게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감리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동아일보 보도(’25년 1월 27일)에 따르면, 2023년 9월 LH 아파트 A건설현장의 감리단장이었던 황우진(가명) 씨는 외벽 철근이 70% 이상 누락된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LH에 보고했다. 그러나 LH는 공사를 강행하려 했고, 황 씨가 반대하자 시행사는 재시공 대신 일부 보강을 제시했다. 결국 황 씨는 이 사실을 언론에 제보했고, 공사는 중단됐다. 내부 고발자로 낙인찍힌 그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 감리 독립성 제한하는 시스템적 문제
감리는 설계 도면과 시공 상태를 점검하며, 철근 배치, 콘크리트 강도 등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감리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감리를 고용한 시행사가 불편함을 느끼면 감리업체 전체를 교체하는 사례도 빈번하다.
보도에 따르면, 경기 지역 대규모 오피스텔 현장에서 지반 공사의 문제를 지적한 감리업체가 교체된 사례도 있다. 해당 감리업체는 콘크리트 말뚝 강도와 깊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지만, 시공사의 공사 지연을 이유로 감리업체 전체가 교체됐다. 교체 사유 문건에는 ‘권한 남용’과 ‘월권행위 빈번’이 명시돼 있었다.
30년 차 감리업체 임모 씨는 “감리 제도가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며 “현재의 시스템에서는 감리업체가 소신껏 일하기 어려운 여건이 많다”고 지적했다.
◆ 공사 중단 권한 있으나 실질적 행사 어려워
감리에게는 공사 중단 권한이 주어져 있지만, 이를 행사하면 민사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다. 시공사가 입주 지연으로 손해를 입으면 감리에게 배상 책임을 묻는 경우가 있어서다. 이 때문에 감리들은 문제를 발견해도 적극 개입하기가 어렵다.
한 감리업체는 “공사 중단을 요구하면 손해배상 소송이 들어온다. 문제를 눈감고 넘어가면 향후 붕괴 사고 발생 시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 감리에게 자폭 버튼을 준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부실 시공 논란이 발생하면 책임은 감리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시공사, 시행사는 문제가 생길 경우 감리를 희생양 삼아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심부름꾼’, ‘부실 공사의 총알받이’로 여기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한 감리업체는 “제도적인 개선 없이 감리 책임만 늘리는 것은 감리를 더욱 위축시키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