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합형태의 갈래 표지 (자료=동녘)
집합형태의 갈래 표지 (자료=동녘)

집합형태의 갈래/ 김영준 저/ 동녘

건축사가 직접 자기 건축론을 피력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한국에서 자기 건축론을 일찍이 선언하고 그 ‘개념’대로 꾸준히 활동해 온 대표적인 건축사는 승효상 건축사이다. 이런 선언적 건축론은 이후 건축 활동에 있어 때로는 제약이 되기도 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입증을 해야 하기에 건축사 자신에게 어렵고 긴 과업이 된다. 세월이 흘러 애초 건축론의 개정 또는 업데이트될 때는 동료 건축사들로부터 오히려 변질되었다고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클라이언트에게는 건축론이 암묵적인 장벽이 될 수 있기에 건축사에게는 불필요한 리스크가 되기도 한다.

그에 비해 김영준 건축사의 신간 「집합형태의 갈래」는, 그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고민해 온 건축론을 남몰래 꾸준히 실천해 온 결과물이다. 책은, 저자가 추구하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집합형태’을 선정하고, 그 ‘갈래’ 개념으로서 10개의 키워드로 구성된다.

그리고 해당 갈래개념마다 저자의 작품 3개씩 보조적으로 삽입되어 있다. 저자의 작품들보다도 10개 갈래개념들마다의 생성 배경과 사변적인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저자는 건축실무자로서 알찬 업무 경험들과 글로벌한 지적 ‘안테나’를 갖고 있는데, 갈래개념들은 그로 인해 얻어진 결과이다. 저자는 해외의 선진건축 개념들로부터 받은 영감과 단서에 대해 착안하고 이를 자신만의 방식과 논리로 설명하는 부분은, 중진의 연륜임에도 신진건축사 같은 열린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합형태’라는 개념도「후미히코 마키」의 저서에서 출발하였다고 책 머리말에서 고백하고 있다. 한편 갈래개념들을 자기 작품을 연결하는 방식으로 많은 다이어그램이 수록되어 있는데, 정작 다이어그램들과 키워드 간의 매칭이 어렵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이 책에서 돋보이는 점은, 저자가 오랜 시간 동안 보완/변형시켜 온 갈래개념들이다. 어느 건축사나 자신만의 ‘화두’를 갖고 있다. 그 화두가 자기 건축론으로 고도화되기 위해서는, 저자의 용어대로 뿌리와 줄기, 즉 하위 개념과 디자인 전략이 필요하다. 건축사에게 하위 개념과 디자인전략은 오랜 시간과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개선과 교정을 반복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은 ‘근성’이다.

건축사에게 ‘근성’이 없다면, 화두는 개인적인 관심사일 뿐 발전하지 않고 희미해지면서 결국 소멸하게 된다. 저자에게 이제 열한 번째 갈래는 불필요해 보인다.

앞서 말한 선언적 건축론은 일관적이기 때문에 폐쇄적이면서 치열하다면, 김영준 건축사의 건축론은 개방적이고 자유롭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작품들보다는 앞으로의 작품이 풍요롭고 변화무쌍할 것 같아 기대된다. 후세대 건축사로서 ‘근성’과 ‘용기’도 본받아야 할 것이지만, 동시대 건축사로서 그가 가진 건축론이 부러운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저작권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