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돌

- 주원익


우리는 끝내 온전한 꿈이 되지 못한다
 
빛 속에서 말이 걸어나온다
 
우리는 그저 빛이라고 묵묵히 발음한다
 
잿빛 구름의 행렬 우리는 말없이 뒤따르고
 
오직 괴로움만이 우리를 꿈꾸게한다
 
우리는 사랑하고 온순한 짐승처럼 두려워한다
 
재빠르게 우리는 움직인다 나에서 너에게로
 
너에게서 그것에게로 달아난다
 
혀를 집어삼킨 듯 중얼거리면서 하얀 돌 속의 길을 따라
 
굳어간다, 침묵으로 침묵을 깨뜨린다
 
검은 말들이 뚜벅뚜벅 그림자 밖으로 사라지는 동안
 
내일의 바람은 내일의 발자국을 지우고
 
우리는 으스러진 허공의 파편이 되어 꿈을 꾼다
 
우리가 그것에게로 가는 꿈처럼
 
끝내 온전한 파편을 꿈꾸지 못한다

 

- 주원익 시집 ‘있음으로’ 중에서/ 문학동네/ 2014년

‘끝내 온전한 파편’도 되지 못하고 마는 꿈일 수 조차 없는 꿈. 주원익은 이 시집 전체를 통해 끝없이 말을 지워 나간다. 말하고 지우고, 말하고 지우고, 그는 지우개로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 지우개가 완성을 위한 행위의 지우개가 아님을 기억하자. 만약 그랬더라면 그의 시는 완벽하고 완전한 단 한 편의 시로 남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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