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의 설계 단계의 모든 것을 주도적으로 계획하는 일, 시공 과정에서 도면대로 시공되는지 확인하는 일, 건축물의 완성 이후에도 사용자가 만족스럽게 사용하는지를 확인하는 일까지, 건축사는 건축의 전 과정을 주도하거나 관여하는 명실상부한 건축의 최고 전문가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건축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대우는 충분하지 않았고, 건축과 건설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넘어 ‘건축사’라는 명칭조차 정확하게 불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신진 건축사들이 처음 사회에 발을 내딛으며, 민간 건축물을 설계할 때 업무 대가를 산정하며 난감해하곤 한다. 적절한 설계 업무를 진행하려면 필요한 비용을 산정해볼 수 있는데, 평당 설계비라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산정 방식을 제시하는 다른 건축사와 가격 경쟁을 하게 되면 계약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애초에 건축 허가에 필요한 최소한의 업무만 하는 것과 공사에 필요한 도서를 모두 작성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데, 여전히 사회적 인식 속에서는 이러한 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이다.
지금껏 대부분의 민간 건축은 공사에 필요한 도면 없이, 시공자가 임의로 허가 도면을 해석하여 시공되는 경우가 많았다. 더 저렴한 것을 찾는 시장 경제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가격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생략되다 못해 최소한만 하는 것이 씁쓸한 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허가 도면 이외의 도면이 없기 때문에 공사비가 변경되어도 명확한 근거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집 짓고 10년 늙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건축주들에게 건축 행위가 유쾌하지 않은 힘든 일로 비춰지곤 했다.
이번에 발의된 건축사법 개정의 내용이 시사하는 바는, 우리가 제대로 받지 못하던 것을 되찾는 것을 넘어 더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동안 가격 경쟁으로 인해 최소한으로 일하는 상황들을 중단하고, 제대로 일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생략되어 오던 도서들을 작성하고, 시공자의 임의 판단이 아니라 설계 도서를 근거로 공사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설계 기간이 조금은 길어지고 더 많은 업무가 주어지겠지만, 우리의 건축이 더 좋은 품질을 갖고 사용자가 안전하고 만족스럽게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의 문제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수십 년 동안 설계비가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은 지금껏 건축사 스스로 제 살 깎아 먹는 경쟁을 하고 있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건축사의 업무 대가가 그동안 적절하게 지켜지지 않았던 것도, 이번에 입법 발의된 업무 대가 기준을 최소한의 기준으로 적용하여 업무를 하게 되는 것도 건축사 스스로가 주체이다. ‘건축사’라는 자랑스러운 이름, 우리 스스로가 가치를 세우고 지켜 나가야 한다.
- 기자명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 입력 2025.01.1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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