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기간 동안 첨단 기술기업인 A사의 사외이사나 고문을 하고 있는 J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이 교수에게 오랫동안 A사와의 인연을 이어간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다. 답은 의외의 스토리로 이어졌다. 탁월한 기술로 A사는 급성장했는데 A사 오너에게 정계 진출 제안이 들어왔다고 한다. 고민하던 A사 오너가 지인들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하나같이 정계 진출에 찬성했다고 한다. 대부분 지인들은 A사 오너가 국가 발전에 기여할 최고 적임자라고 치켜세웠다.
하지만 J교수만 유일하게 반대했다. 기업인이 정치권에 들어가서 성공한 사례가 드물고 이왕 기업을 만들어 나라에 기여했으니 앞으로 회사를 더 크게 성장시키는 데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승승장구했던 A사 오너 입장에서 정치권에 가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J교수의 말에 화를 낼 수도 있었다. 하지만 A사 오너는 유일한 반대 의견을 펼쳤던 J교수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계에 진출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 계속 그를 곁에 두고 주요 결정을 할 때마다 자문을 받고 있다.
이 스토리 만으로도 A사 오너는 훌륭한 리더십을 행사할 것이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일반적으로 리더가 되는 순간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이게 된다. 권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위의 사람들이 달콤한 말만 하는 예스맨들로 변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을 정확히 간파한 A사 오너는 ‘노(NO)’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의사결정의 균형추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렇게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리더는 많지 않다. 최근 동아비즈니스포럼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리더십의 대가 맨프레드 케츠 드 브리스 인시아드대 교수는 리더가 무능할 기저확률(base rate, 어떤 요소가 통계적으로 차지하는 기본 비율)이 최소 50% 정도라고 말했다. 현실에서는 절반보다 더 높은 확률로 무능한 리더를 많이 목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맨프레드 교수에 따르면 실패하는 리더는 4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권한을 행사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리더다. 맨프레드 교수는 사랑받고 싶다면 아이스크림을 팔아야지 리더가 되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특정 상황에서 리더는 직원들에게 고통스러운 말이나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둘째는 직원을 괴롭히는 리더다. 시기, 질투심이 강하거나 원한을 갚기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리더가 있는 조직은 쉽게 망가진다.
셋째는 업무 하나하나를 세세히 관리하는 마이크로 매니저다. 세세한 의사결정까지 모두 해야 하는 완벽주의자들이 리더가 되면 직원들은 성장하기 어렵다. 넷째는 나르시시스트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 리더가 되면 팀워크가 파괴되고 성과 창출도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십이 바람직한 모습일까. 맨프레드 교수는 카메룬에 서식하는 실버백 고릴라의 우두머리가 하는 역할은 다음 세 가지라면서 이는 현대 조직의 리더에게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째, 방향을 제시하고 둘째, 안전을 보장하며 셋째 질서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즉,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하는 것, 구성원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것, 조직원의 행동 지침이 되는 질서를 잡아주는 것이 리더의 핵심 역할이라는 얘기다. 이 세 가지 역할만 잘 해낸다면 조직원의 신뢰를 받는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