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읍성(邑城)은 지금의 시청이나 군청처럼 지방 행정 기능과 군사적 기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교육·제사 기능까지 갖추었던 성곽을 말한다. 읍성은 산성과 달리 유사시에는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는 군사적 요새인 동시에 주민들을 위한 행정 시설이라고 할 수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와 서상리 일대에 있는 청도읍성은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지은 성으로, 산성과 평지성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크게 훼손되었지만, 2005년부터 진행된 복원 사업 덕분으로 현재는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청도의 성곽과 읍성
청도읍성이 있는 청도군 화양읍 동상리와 서상리 일대는 일제강점기에 청도군청이 화양읍 범곡리로 이전하기 전까지 청도군의 모든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범곡리에 청도역이 생기면서 신시가지가 조성되었고, 자연스럽게 청도역이 있는 곳으로 청도군청이 이전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청도읍성의 위용은 사라지고, 과거의 영광만 남은 채 점점 작은 마을로 쇠락해 갔다.
청도에는 청도읍성을 비롯하여 네 개의 산성이 있었음이 조사되었다. 네 개의 산성은 화양읍 토평리에 있는 백곡산성, 청도읍 송읍리에 있는 주구산성, 매전면 구촌리에 있는 오례산성, 운문면 신원리에 있는 운문산성이다. 이 산성들은 모두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운문산성을 제외한 나머지 산성은 이서국(伊西國, 삼한시대의 성읍 국가)과 연관되어 있다.
청도읍성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당시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지만, 기록에 따르면 ‘선조 23(1590)년 왕명에 의해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청도읍성은 조선 후기 읍성의 구조를 잘 보여주며, 대부분의 읍성이 큰 산 남쪽에 있는 것에 반해 북쪽에 있는 점이 특징이다.
청도읍성은 해발 100~122m 높이의 언덕과 평지에 만들어진 조선 후기 읍성의 구조를 잘 보여주는 성곽이다. 이 읍성은 동서 간은 930m, 남북 간은 870m로 정사각형에 가까운 형태이며, 총둘레는 약 1.8km 정도이다. 성안에는 당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이 확인되었다.
읍성의 중앙에는 도주관이, 남쪽에는 아사와 동헌을 중심으로 한 행정 기관이, 동쪽에는 창고인 사창을 비롯해 대동고·사마소·고마청이, 북쪽에는 군사들이 사용했던 군기청·군기고·군관청이, 서쪽에는 시장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성밖에는 청도 석빙고, 청도 향교, 청도 척화비, 청도 선정비 등의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청도 석빙고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6기의 석빙고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관련 연구에 귀중한 문화재이다.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
청도군에서는 청도읍성의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에 2005년 청도읍성에 대한 정밀지표조사를 시행하고, 보수(복원 및 정비) 사업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청도읍성의 복원과 함께 단절되었던 ‘청도읍성 밟기’ 행사가 2009년부터 매년 봄에 개최되고 있다. 읍성 밟기는 부녀자들이 열을 맞춰 돌면서 읍성을 밟는 풍속으로 과거 남자들은 성을 지키고, 여자들이 돌을 머리에 이고 운반하던 것에서 기원하였다. 더욱이 성을 밟으면 액운을 쫓고, 무병장수한다는 믿음이 더해지면서 청도 주민들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참여하는 행사로 발전되었다. 행사에는 진혼 공연, 마상무예 시범 공연, 풍물놀이 등의 다양한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 지역N문화
청도읍성 동문 주차장 주소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