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2024년이 지나갔다. 하지만 여기저기에서 2025년이 더 힘들어질 거라고 한다. 이 시점에 잠시 나의 건축 시계를 돌려본다. 건축 호황기던 1990년 공업계고등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다. 92년 여름 방학에 건축사사무소 실습을 시작해 본격적인 건축인생이 시작됐다.
A1 청사진 도면으로 인허가를 했고, CAD가 보편화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1997년 IMF사태를 겪었고, 99년에는 고향 부산을 떠나 서울에 정착했다. 다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시기에 건축사 자격시험에 합격했고. 2009년 꿈꾸던 나의 사무실을 오픈해 수도권 중규모 도시에서 17년 차 생계형 건축사로 생활하고 있다.
몇 번의 설계공모에 당선되었고, 설계공모 심사도 하고 있다. 건축공사 감리는 물론 석면해체감리, 건축물 해체감리도 업무영역이다. 여기에 건축 기획업무, 인테리어 설계도 하면서 건축사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업무를 추진하며 열심히 일했다.
멀리 제주도, 해남, 구례, 울산에 설계한 건물이 있고, 안동, 정읍, 화천, 남원, 원주에 한옥설계작품도 있다. 이제는 여행인지 업무인지 가끔은 헷갈리기도 한다. 50 제곱미터도 안 되는 단독주택부터 1만 제곱미터가 넘는 오피스텔, 공장도 설계 해봤다.
요즘 자주 사용하게 되는 표현이 생계형 건축사이다. 직원으로 처음 건축을 시작했을 때보다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지금이 꿈을 이뤘으니 더 행복해야겠지만, 매월 돌아오는 결제일과 월급날이 야속하기만 하다. 생계형 건축사의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유명한 건축물을 남겨보겠다던 처음의 그 기개는 어디 가고, 생계를 위해 건축을 하는, 그래서 자존심보다는 현실과 자꾸 타협을 하는 그런 소소한 모습의 자영업자는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의 건축에 대한 진정성을 알아주는 건축주가 있겠지, 언젠가는 나도 랜드마크 건축을 할 수 있겠지라는 희망은 버리지 못하겠다. 나의 삶에 있어 건축은 40년 가까이 꿈꿔왔던 모습이고 현실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인 필자는 이제 시작이라 생각하고, 나의 건축에게 응원을 보낸다. 지금까지 지켜온 너의 건축이 이제는 사람을 위하는 건축으로 빛날 것이다.
우리 건축사가 행복해야 행복 가득한 건축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건축을 알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맺음말인데, 우리 건축사 독자들에게 다시 들려주고 싶다.
"건축을 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더 행복한 건축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