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 아래서

- 이제하

무엇으로 너의 쓸쓸함을 채워주랴
아득한 광야를 너는 꿈꾸고 있으나
흐르는 물 우리 앞에 지금도 죽지 않고
그 소리 아직 멀리멀리 이르지 않았나니
이승에서 잠시 앉는 이 나무 그늘에
우리가 무엇을 더 달라고 하랴
어두운 구름 떼 주공(宙空)에서 푸르게 
푸르게 스러지고
하나 남았던 길이 작은 바람에 지워지네

​무엇으로 너의 쓸쓸함을 채워주랴
머나먼 바다를 너는 꿈꾸고 있으나
남은 모닥불 우리 앞에 지금도 죽지 않고
저 빛 아직 멀리멀리 이르지 않았나니
이승에서 잠시 앉는 이 나무 그늘에
우리가 무엇을 더 달라고 하랴
어두운 구름 떼 주공(宙空)에서 푸르게 
푸르게 스러지고
하나 남았던 길이 작은 바람에 지워지네
 

- 이제하 노래시집 ‘빈 들판’ 중에서/ 나무생각/ 1998년

우리 문단에서 이제하는 독특한 존재다. 그는 우리 문화 풍토에서는 드문 비트제너레이션을 통과한 히피의 분위기가 있는 문인이다. 단순한 문인이 아닌 것이, 시와 소설, 미술, 영화, 음악에 걸친 다방면의 활동도,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궤적이다. 이 시는 음악을 위해 지어졌고, 음악은 시를 위해 지어졌다. 소설가로 더 잘 알려진 그는 곡도 쓴다. 그리고 노래도 부른다. 이제하는 싱어송라이터다. 소셜미디어에 검색하면 그가 웅혼한 마산 억양으로 전하는, 한없이 쓸쓸한 이승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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