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헌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오(사진=건축사사무소 오)
오정헌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오(사진=건축사사무소 오)

늘 화두가 되고 있는 건축사들의 설계공모 대신, 건축 문화의 근간이 되는 미래 세대들의 공모전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공모전은 학생들이 자신의 창의력과 건축적 사고를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장이다. 과거에는 권위를 가진 공모전과 기관, 기업, 지자체 등이 주최한 다양한 공모전들이 있었고, 이는 경쟁을 통해 잠재력과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현재의 건축 공모전을 살펴보면, 과거에 비해 공모전 문화는 다소 약화된 것처럼 보인다. 지역 공모전과 권위를 유지하는 몇몇 공모전이 남아 있지만, 학부 커리큘럼 이외에 본인들의 끼와 재능을 보여주는 기회가 적어지는 게 아쉬움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지역 공모전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건축가협회 제주건축가회가 주관한 2024 제주건축대전이다.

2024 제주건축대전은 ‘제주 생활자(Jeju-Island Dweller) : 새로운 공동체 모색’을 주제로, 섬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종(인간과 비인간)을 공동체로 설정해 우리가 제주라는 환경 안에서 어떠한 건축을 제안할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의 상생 방식에 대해 함께 논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인류세 (Anthropocene)를 가지고 제주라는 섬의 인류세는 어떠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둔 셈이다. 필자는 이 주제가 ‘건축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방안을 기성세대는 물론 학생들 특유의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시선을 빌리고자 한 의도로 봤다.

주제 해제를 보면 좀 더 공모전의 취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공모전 측은 참가자들에게 몇 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제주라는 환경 안에서 다양한 관계를 복원·연결하기 위해 모든 종을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것, 건축사의 시선에서 인간과 인간 외 모든 종을 하나의 공동체로 해석할 것, ‘제주 생활자’라는 범주에 인간만이 아닌 모든 종을 위 한 건축적 접근을 할 것 등이다. 공모 전 참가자들은 요구 조건과 주제에 맞춰 각자의 건축적 의도를 보여줬다. 제주의 포구, 숨골, 오름, 바다 등을 배경으로 다양한 제주 생활자에 대한 탐구를 표현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몇 작품을 꼽아 보자면, ‘Altruistic Boundaries(이 타적인 경계)’, ‘be filled with-in the POT’, ‘새별오름 이야기’ 등이 있다. ‘이타적인 경계’는 제주 포구의 공간 구조인 안캐, 중캐, 밖캐를 새롭게 해석해 해양 생물종의 서식지 복원을 제안하고, 바다 속 제주 생활자들과의 상생을 보여줬다. 이 작품은 2024 제주 건축대전 대상으로 선정됐다.

기후 변화와 제주 지하수에 집중 해 물허벅, 물팡, 심팡 등 제주 전통 물 문화를 재해석한 작품도 있었다. 우수상을 받은 ‘be filled with-in the POT’은 지하수를 생산하는 숨골을 재해석해 공간화한 인공 숨골을 통한 수자원 보존과 새로운 물 문화를 만드는 계획안이었다.

들불축제로 훼손된 새별오름을 초지로 재작동할 수 있도록 경계를 만드는 ‘새별오름 이야기’는 최소한의 재료와 구축 방식, 새별오름에 머무는 다양한 생활자들의 스케일을 고려해 설정한 경계가 공동체적 장소로 작동하며 긍정적 순환을 이끌어 내 특선을 수상했다.

2024 제주건축대전을 둘러보며 필자는 이 같은 화두를 가진 지역 공모전이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한다고 생각했다. 세대 간의 소통과 지속 가능한 건축 방법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만큼, 앞으로 더 많은 지역 공모전이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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