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건축업계는 경제적 어려움과 제도적 한계를 반복적으로 겪어왔다. 이러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사의 가치와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14년 열린 ‘한국 건축 백년대계 토론회’를 돌아보며,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비교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2014년 12월 9일, ‘대한민국의 건축 현실과 건축사의 미래 진단’이라는 주제로 ‘한국 건축 백년대계 토론회’가 건축사협회에서 열렸다.
첫 번째 발제자인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당시 우리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건설과 부동산의 침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경, 생태, 에너지, 정보통신, 문화예술 등이 융합된 건축설계 문화를 통해 질적 수준을 높이고, 환동해 경제권의 개발과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이상헌 교수는 한국 건축이 여전히 건설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건축기본법 이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제정됐으나, 지엽적인 문제 제기에 그쳐 근본적인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한국 건축의 정체성과 주관 부서 부재를 비판했다. 또한 “입찰이나 대가기준이 엔지니어링 설계와 동일하게 취급되고 있어,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에 ‘건축서비스’를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건축의 체계화를 위해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자인 청주대학교 행정학과 손희준 교수는 건축 설계업계가 값싼 비용으로 최적의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비정상적인 구조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컨설팅비는커녕 용역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개인과 공동체의 성향이 내면과 집단의 미래를 결정짓는다”고 덧붙였다.
합동토론에서 윤혁경 건축사는 설계 시장의 불균형을 비판하며, “상주감리 대상 건축물은 2%, 비상주감리 대상 건축물은 98%를 차지한다”며, 감리와 설계 변천 과정에서 설계 도서와 감리 도서의 부족이 감리 역할을 형식화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결국 시공 도면과 내역서 없이 시공자가 마음대로 공사를 진행하는 현실이 초래됐다”고 말했다.
당시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제해성 소장은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에 건축서비스의 범위와 정의가 불분명하다”며, 체계적인 서비스 업무 표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설계, 감리, 관리, 기획 업무를 나누고 포괄수가제에서 행위별 수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건축설계교수회 구영민 회장은 건축 설계를 수행하는 데 있어 “사회 변동에 대한 인지 능력을 종합적으로 배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린모임참 건축사사무소의 전영철 건축사는 “22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설계 용역비가 낮고, 계획안을 대가 없이 제출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지적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대가기준을 법제화하고, 적정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설경제 최지희 전문기자는 “관피아와 용역 평가제라는 노예 계약제가 문제이며, 제대로 된 표준계약서조차 없는 산업은 대한민국 건축이 유일하다”며, 건축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건축정책학회 강부성 부회장은 현재 건축 산업이 변혁기에 있으며, “건축서비스의 신뢰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건축 설계물 관리 시스템과 건축서비스 보험 제도를 위한 기금 마련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낮은 용역비와 비정상적 구조,
민간 대가기준 법제화 및 표준화 시급
관피아·용역 평가제 등
구조적 문제 해결 위한
실질적 개혁 요구
건축사의 가치 고민 부재 시,
과거 문제 반복 가능성 커
국가와 협회, 공공과 민간의 가교로서
건축사 가치 제고 역할 필요
올해 11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축사자격제도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에서는 업계 생존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실무 중심 자격 개선과 건축사 면허제 도입이 논의됐다. 이는 건축사의 전문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10년 전 토론회는 건축사 자격 문제를 다루지 않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건설 위주의 산업 구조, 건축법 부재 등이 핵심 논의 주제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도 건축사의 역할과 가치를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국가는 공공을 위해 민간에 전문성을 부여했다면, 법률체계의 효율적 집행과 적정 용역대가 제정을 통해 건축사업의 입지를 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한건축사협회는 회원들에게 등대와 방파제 같은 역할을 하며, 공공과 민간 업무를 수행하는 건축사들이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자율과 경쟁이라는 명분 아래 기존 용역 체계가 사라지고, 설계공모와 입찰 과정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실에서, 협회는 더욱 적극적으로 회원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건축사의 가치는 개인적 전문성과 공공적 책임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가지며, 이는 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국가 경제와 공공의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 이러한 가치가 건축사 업역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발전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