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건축사(사진=이상이 건축사)
이상이 건축사(사진=이상이 건축사)

‘건축을 하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다. 건축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고된 여정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표현이다. 건축주가 건축사를 만나는 순간은 그런 여정의 첫 관문이다. 많은 건축주는 이 첫 만남에서 긴장과 기대를 동시에 품는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나는 10여 년 전부터 ‘친절한 이건축사’라는 닉네임을 블로그와 SNS에서 사용해 오고 있다. 친절함이 본래 성격은 아니었지만 나름의 방식으로 친절함을 연습하고 건축주 눈높이에 맞춘 쉬운 설명과 상담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공감하며, 건축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건축사의 역할을 진지하게 고민해 왔다.

건축은 건축주에게 있어 인생에서 가장 큰 모험이자 도전이다. 평생 모은 돈, 때로는 살고 있는 집과 대출까지 동원해 추진하는 일이기에 과정 속에서 예민함과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설계가 마무리되면서, 꿈꾸던 그림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길 때 건축주는 비로소 공사에 나설 결심을 한다. 이를 위해 건축사는 전문성을 발휘해 건축주가 공사를 추진할 수 있는 방향성을 제시해야 하며, 시공업체 선정 과정에서는 사업비 범위 내에서 이행 가능성을 판단하도록 조력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선택과 결정은 결국 건축주의 몫이다.

시공자가 선정되고 나면 모두의 설렘과 기대 속에서 공사가 시작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현장은 예상치 못한 변수, 민원, 설계 변경, 공사비 증가 등의 문제로 복잡해진다. 초반에 화기애애했던 건축주와 시공자의 관계도 공정이 진행될수록 갈등으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사의 역할은 단순히 설계를 제공하고 현장을 점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특히 소규모 현장의 경우, 건축사는 때로는 적극적인 조정자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건축주와 시공자가 마지막까지 함께 웃으며 마무리할 수 있는 현장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건축사의 최고의 역량이라 믿는다. 완벽한 프로젝트는 없을지라도, 건축사의 역할이 프로젝트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간다면 그 과정에서의 수고는 반드시 값진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앞으로 민간 설계 대가가 오른다 해도, 늘어난 건축사의 수와 줄어드는 건축 수요로 인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특히 영세한 개인사무소의 운영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패턴의 수주 방식과 업무 서비스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워진다. 대지 구입부터 설계와 시공, 사후 관리까지 전 과정에서 건축사업무의 새로운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제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또한 지금의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건축사의 역할과 가치를 재정립해야 한다.

‘건축을 하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더 이상 건축의 고단한 현실을 대변하는 말로 남지 않기를 기대한다. 대신 건축사의 노력과 역할 덕분에 그 여정이 ‘수고로웠다’ 정도의 긍정적인 기억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건축의 여정이 지금보다 긍정적으로 변화한다면 건축주가 건축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지 않을까? 건축주와 시공자, 그리고 건축사가 완성된 결과물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날이 많아질 수 있도록 오늘도 ‘친절한 이건축사’의 길을 소신 있게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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