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나무
- 황지우
11월의 나무는, 난감한 사람이
머리를 득득 긁는 모습을 하고 있다
아, 이 생이 마구 가렵다
주민등록번호란을 쓰다가 고개를 든
내가 나이에 당황하고 있을 때,
환등기에서 나온 것 같은,
이상하게 밝은 햇살이
일정 시대 관공서 건물 옆에서
이승 쪽으로 測光을 강하게 때리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 그림자 위에
가려운 자기 생을 털고 있다
나이를 생각하면
병원을 나와서도 病名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처럼
내가 나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11월의 나무는
그렇게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는 등뒤에서 누군가, 더 늦기 전에
준비하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다
-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중에서/ 문학과지성사/ 1998년
칼럼니스트 강성곤 교수의 말처럼 “뭣 좀 배우고, 술에 절어보고, 죄도 많이 짓고, 후회와 기교를 반복하는, 한국 아저씨들 감성에, 황지우는 역시나 강력”하다. ‘여전히’ 강력하다고 할까? 황지우의 시 중에서도 잘 된 시라고는 할 수 없는 이런 시에서도 황지우의 후회는 강력하다. 그것은 그의 후회가 역사와 정치를 넘어 일생의 나무와 정직하게 대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자가 ‘시경’을 선집할 때의 기준이 ‘사무사(思毋邪)’다. 직(直)이야말로 시의 가장 강력한 힘이다.
함성호 시인
haamx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