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배 건축사(독일 건축사)‧주.스톨츠 건축사사무소 (사진=주.스톨츠 건축사사무소)
진경배 건축사(독일 건축사)‧주.스톨츠 건축사사무소 (사진=주.스톨츠 건축사사무소)

최근 건축 설계공모를 진행하며 놀라웠던 점은, 규모가 크지 않은 공모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건축사사 무소가 참여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인원은 다를 수 있겠지만, 단순히 회사의 규모를 기준으로 본다면 직원 수가 5인 미만인 소규모 사무소가 1,000명 이상의 대형 회사와 경쟁해야 하는 것은 분명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건축 경기가 위축되면서 설계공모의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민간 수주를 기반으로 운영되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들도 민간 수주가 줄어들자 설계공모에 뛰어들었으며, 대형 건축사사무소들 역시 회사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분야를 가리지 않고 공모에 참여하고 있다.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대형 기업과 경쟁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대기업과 소규모 건축사사무소는 인력 구성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며, 외주업체 활용 비중에서도 상당한 격차가 있다. 심사 과정에서 친환경 설계, 공사비 산정, 조감도, 보고서 디자인 등 전문가의 손을 거친 보고서는 더 완성도 높고 신뢰감을 주기 마련이다. 이런 이유로 대형 기업과 경쟁하는 것은 매우 힘겹다. 라이트급 아마추어 복서가 매일 전문가들에게 코치를 받는 헤비급 선수와 싸운다면, 과연 승리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요즘 제출되는 당선안들을 보면, 당장 인허가 접수가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안이 선정되고 있다. 당선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매번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제출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일일까? 더욱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발주처의 요구 사항이 많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이를 감당하며 버틸 수 있을까? 경쟁이 과열될수록 건축사 사무소들은 더 많은 리스크를 떠안게 될 뿐 아니라,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건축사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을 제안해본다. 설계권을 모두 한 번에 부여하는 대신, 계획설계와 실시설계를 분리하는 방식이다. 계획설계 단계에서는 순수하게 아이디어에 중점을 둔 설계공모를 진행하고, 실시설계는 입찰을 통해 발주하는 것이다. 이 방식을 도입하면 공모 상금이 줄어들 수 있지만, 그만큼 외주 비용 부담도 감소할 것이다. 또한, 당선 후 설계비 명목으로 받는 금액이 크지 않기 때문에 공모 심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청탁 등의 문제를 줄이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실시설계를 기본설계의 연장선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독일에서는 계획 설계와 실시설계가 전체 설계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비슷하다. 감리를 포함한 설계비 기준으로, 계획 설계는 LP1-4 단계에서 27%, 실시설계는 LP5 단계에서 25%를 차지하며, 균형 잡힌 설계비를 책정하고 있다.

따라서 계획설계와 실시설계 분야를 분리해 발주함으로써,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설계공모 참여자들의 부담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하나의 프로젝트를 계획설계와 실시설계를 각각 다른 업체에 분리 발주하는 방식은 특정 회사에 일이 과도하게 몰리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회사 규모가 작더 라도 아이디어만 뛰어나다면, 의미 있고 규모가 큰 설계공모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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