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들의 명상록

- 이승훈

2층 아파트에서 짐을 싸다 말고 
베란다로 가서 마당에 침을 뱉는다.
그때 아파트로 들어서던 남자의 머리에 
침이 떨어지고
그가 쳐다보며 욕을 한다.
“미안합니다.”말하고 돌아와 짐을 쌀 때
키가 큰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누구세요?”
그녀는 자기도 함께 가겠다고 말한다.
“난 며칠 절에 가서 쉬려고 그래요.”
내가 말하자 “저도 그래요.” 
처음 보는 그녀가 말한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다.

 

- 이승훈 시집 ‘화두’ 중에서/ 책만드는집/ 2010년

이승훈 시인은 생전에 매일 오전 11시 30분 중국집에서 잡채밥만 시켜서 먹었다. 저녁밥 대신 멸치와 김을 안주로 맥주만 들이켰다. 불안과 우울은 그의 시를 지배하는 주된 감정들이다. 전혀 인과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불쑥 뿔쑥 연결된다. 첫 번 째 사건인 침에 맞은 재수 없는 남자가 가장 정상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불쑥 나타난 여자의 등장으로 우리는 시의 화자가 짐을 싸는 이유를 알게 된다. 정보는 시의 화자 간에는 불통하지만 시 바깥의 독자에게는 정확히 전달된다. 그런 일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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