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희 건축사(사진=이지희 건축사)
이지희 건축사(사진=이지희 건축사)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를 계속하기로 결심했다면, 이후 건축사를 준비하게 된다. 학생 때, 아니 실무수련 때만 하더라도 건축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고 한다기보다는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면 사무실을 차리고 내가 하고 싶은 설계를 하는 전문직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건축사 자격을 갖추고 사무실을 개설하여 운영하다 보니, 직원일 때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일들이 훨씬 많아졌다. 이제야 오롯이 내가 하고 싶었던 설계를 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개소 후에는 설계 외에 건축사로서의 대외활동과 일을 수주하기 위한 영업행위, 그리고 직원과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한 관리 등의 일들에 치이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하고 싶었던 설계에 대한 열정이나 노력이 전과 같지 않게 됐다. 그렇게 몇 해의 시간이 지나고 보니 현재 상황이 아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 건축을 이전과는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된 것 같다.

필자는 학부에서 건축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부동산학을 공부하면서 건축을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전에 건축이란, 땅을 해석하고 법규에 맞추어 최적의 배치를 통해 사업주의 요구사항에 맞추어 평면을 구성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건축물로 탄생할 수 있도록 인허가 절차 이후에도 수많은 디테일을 고민하고 현장을 관리하는 일 역시 건축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업에서 보면 건축은 자본주의 논리에 따른 다양하고 많은 예측 불가능한 요소들에 의한 만들어진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건축사로서의 나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생각도 다시 바로 세우게 되었다. 

자격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클라이언트의 의뢰를 받고 수행하는 건축설계란, 도면작성이 반, 그리고 행정업무가 반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면에는 설계자와 사업주의 의도, 그리고 사업성과 공사비를 고려한 디테일 등 사업성과 관련한 모든 것이 담겨있다. 그리고 행정업무는 허가부터 준공까지 건축사가 작성한 도면이 실제 건축물로 구현되기까지 일련의 전반적인 과정이 포함된다.

건축사사무소에서 하고 있는 건축설계란, 결국 하나의 프로젝트에 있어서 사업의 시작부터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과정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Project Management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 건축사의 역할 역시 단순하게 내가 디자인하고 싶은 설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를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우리가 설계한 건축물이 실제 구현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기획하고 관리하는 일이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독 1인 건축사사무소가 많은 국내 건축계에서 건축사가 이러한 일들을 혼자서 수행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물론 프로젝트의 규모 및 각자의 역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각각의 건축사사무소가 역할을 분담하고 서로 협업한다면,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도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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