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거대한 성당을 설계한 건축사들은 대부분 구조를 디자인한 엔지니어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화가 혹은 조각가이거나 음악에 능통한 인물도 있었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점차 건축물이 더 많은 기술의 집약체가 됐기 때문에 한 사람의 뛰어난 거장의 역할을 여러 명의 전문 기술자가 나눠서 감당하게 됐으나, 이를 총괄하는 사람은 건축사이다.
가끔 길에서 ‘건축/인테리어’라는 문구가 적힌 간판들을 보며 조금은 의아할 때가 있다. 인테리어 역시 건축의 일부일 텐데, 사회적으로 건축공사와 인테리어 공사를 조금은 다른 영역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표현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근린생활시설의 경우 골조 공사가 완료된 건물에 인테리어를 별개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하지만 건축은 하나의 완성체이며, 여러 가지 요소들이 모두 통합된 상태이다. 건축에서 일부 공종을 분리해내려는 것은 인테리어 공사를 분리해서 진행하겠다는 것과는 크게 다른 것이다.
지난달 ‘건축물 설계도서 작성기준 일부 개정안’에 수많은 건축사들이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에는 단순히 도면 작성의 주체가 누구인지의 문제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건축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구조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건축 설계가 곧 구조 설계이다. 어찌 기둥이나 내력벽을 그리지 않고 평면도가 완성될 수 있겠는가. 정확한 구조 단면의 크기나 철근 배근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상식적인 수준의 구조 계획이 건축사에 의해 진행된다. 이러한 계획은 모든 층을 아우르는 공간의 이용을 생각하는 동시에 공사 비용이 효율적으로 책정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요인을 함께 고려해 결정된다.
두 번째로는 수주와 총괄적인 도면 확인의 이유이다. 건축 설계에서 특정 분야를 분리 발주할 경우, 건축사가 하나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 벌이는 노력은 어떻게 보상될 것인가 생각해보아야 한다. 설계 공모를 통한 일이나, 민간 건축주들을 통해 진행되는 일들 모두 그냥 수주된 것이 아니라 많은 노력이 수반된 것이다. 또한 다양한 건축 요소와 설비 배관이 교차되는 곳에 어떠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기능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분리 발주가 이뤄지려면 이러한 업무에 대한 보상은 별도로 추가돼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책임의 문제이다. 도면 작성의 주체를 변경하고자 한다면 책임도 분리하도록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는 건축사도 있다. 이번 일부 개정안의 내용이 매우 아쉬워서 그렇게 생각하시는가 싶지만, 현재도 시공사가 작성해야 할 서류들을 건축사가 작성해주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건축 전반의 수많은 일들이 마치 건축사의 책임인 양 전가되고 있기에 이해가 된다. 건축사가 여전히 총괄적인 책임을 지면서, 일과 대가는 점점 분리돼 타 분야가 가져간다? 우리는 반대한다. 건축의 품질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 기자명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 입력 2024.10.24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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