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하다 보면 부득이하게 급히 차선을 바꿔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본인이 그 상황에 처하면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합류 도로 이후 해당 방향으로 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나, 도로 체계를 파악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그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스스로 합리화한다. 반대로 내 차 앞으로 다른 차가 들어올 때는 상황이 다르다. 일단 차선 변경이 아니라 끼어들기가 되고, 차선은 원래 내 것이 아닌데 빼앗기고 침범당한 느낌이 든다.

건축사 스스로 얼마나 원칙과 양심을 지키고 있을까. 원래 그렇게 진행되어서는 안 되는 방법이지만, 사업의 성패와 생계가 달린 문제라는 이유에 더해 관례이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따른다는 그럴듯한 핑계가 더해지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윤리라는 틀에서 탈출시킬 수 있다.

마치 급한 차선 변경을 하면서 도로를 탓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여전히 심의위원이나 심사위원을 찾아가 대가를 제시하는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남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원칙을 어기고 있을 것이라는 그릇된 추측이 더해지면, 잘못된 상황이 더 나빠지게 된다. 많은 차량이 끼어들기를 시도하고 있는 상황이 뒷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없애주듯이 말이다.

점점 더 많은 건축사들이 설계공모에 참여하고 있다. 로비보다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실력으로 승부하는 분들의 비율이 더 많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참여 인원이 많아진 만큼 여전히 심사위원들의 전화기는 바쁘게 울린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해 보려는 심사위원들이 이를 공론화하고, 해당 업체를 심사에서 제외시키는 사례도 모아지고 있지만, 이러한 성향의 심사위원들을 따로 분류해 사전 접촉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한 신진 건축사는 ‘폐업할래? 로비할래?’라는 기괴한 말이 과연 조언일지 협박일지 궁금했다며 현실을 개탄했다.

아직 더운 날씨가 가시지는 않고 여름이 길어진 느낌이 들지만, 어느덧 선선한 바람이 불기도 한다. 계절이 바뀔 때면 동양 고전 채근담의 글귀를 떠올릴 때가 있는데,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이라는 글이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하고, 자신에 대해서는 가을 서리처럼 냉철하라”는 뜻이다.

남의 잘못은 지적하고 스스로에게는 관용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 본디 사람의 모습인데,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는 말이다. 부디 윤리라는 잣대가 바르게 적용되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관례라는 좋은 핑계보다 원칙이라는 중심을 되찾기를 바란다. 반칙으로 가득한 투기장이 아니라 실력으로 벌이는 진검승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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