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둥지 안에 세들다
소름 9
- 정우림
일 년에 한 번씩 집세를 올려 달라고 했습니다 일 년이 그리도 짧은지 몰랐습니다 월급을 다 모아도 전세금을 따라 잡을 수 없고 번개탄 피우며 바라본 아파트 불빛은 뿌옇고 매캐했고 저 많은 아파트 중에 우리 집은 어디 있나 아기 발은 커 가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헤아릴 수 없는 생각의 불빛을 따라가다 잠든 밤 꿈에서 반쯤 접힌 몸 다시 일으켜 출근을 했습니다 아이는 울음보가 점점 커져서 버스 꽁무니까지 따라다녔습니다
세들어 살다 새 둥지 안까지 도착했습니다 골짜기와 골짜기가 서로 마주 보며 메아리 들려주는 곳으로 새들이 서로 빨랫줄을 이어 주는 곳으로 나뭇가지와 오색실을 물어다 주는 곳으로 노을과 산이 서로 포옹하는 곳으로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으로 한밤에 꺼진 어둠을 피우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아무도 나가 달라고 말하지 않는 곳으로
- 정우림 시집 ‘코카서스 할아버지의 도서관’ 중에서/ 파란/ 2024년
두 연의 대비가 극명하다. 앞에는 도시의 잔인함을, 뒤에는 목가적 삶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두 연 다 시의 화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화자는 어쩌면 도시에서 쫓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삶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이런 시적 정서가 두 연에서 대비되는 것이 이 시의 핵심이다. 둘 째 연에서 “도착했습니다”고 말하지만 그 다음 문장은 계속 ‘~곳으로’로 도착이 유보되고 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듯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