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OM-IN】 프랑스 사례로 본 건축사 업무대가 정상화 방안과 시사점
프랑스, 건축을 공사비 절감 이상의 문화적 표현으로 인식
이러한 인식이 건축사 업무대가에 중요한 영향 미쳐
건축사 위상과 책임 강화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용
건축물 완성 과정이 8단계로 세분화돼 완성도 높여
국내도 건축사 전문성과 인식을 높여야 공정성 확보 가능
설계 후 신속한 진행만 강조, 품질보다 속도 중시
건축사 위상과 공정한 업무대가 위한 환경 조성 필요
“프랑스에서는 건축이 단순한 공사비 절감이나 기능성 이상의 문화적 표현으로 인식되며, 이러한 인식이 건축사 업무대가의 책정과 보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희재 건축사(정희재 건축사사무소, 프랑스 건축사)는 프랑스의 건축사 업무대가 체계와 그에 따른 사회적 인식을 바탕으로, 건축사의 직업적 위상과 책임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정희재 건축사는 “프랑스에서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총 8단계로 세분화돼 있으며, 이 체계가 건축적 완성도를 높이는 중요한 제도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를 언급하며, 한국에서도 건축사의 전문성과 사회적 인식을 높여야 업무대가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제도적 지원과 환경 조성을 통해 건축사의 직업적 위상을 높이고, 속도가 아닌 품질에 집중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대한건축사신문은 프랑스 사례를 통해 한국 건축사 업무대가 정상화에 대한 시사점을 정희재 건축사(프랑스 건축사)에게서 들어봤다.
Q. 프랑스 문화유산법 제 L.111-1 조항에서 “건축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문화적 표현이며, 사회적, 환경적, 경제적, 그리고 미학적 측면에서 중요하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법률은 건축이 문화의 중요한 부분임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이를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인식이 건축사의 업무대가 책정 및 보호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프랑스에서는 건축사 양성을 위한 교육이 교육부가 아닌 문화통신부 산하에서 운영되며, 국립건축대학교 및 대학원이 그 역할을 담당합니다. 건축학과는 종합대학의 한 분야가 아니라, 독립된 건축대학교 및 대학원으로 운영됩니다. 프랑스의 국가공인 건축사 자격증(HMONP)을 취득하려면 필기시험과 실무 논문 발표가 필요합니다. 이론 수업에서는 일정 규모와 용도의 건축물에 대해 법규에 따라 반드시 건축사와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이는 건축사에게 시장 독점권이라는 특권을 부여하는 동시에, 공익에 부합하도록 행동해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부과합니다.
건축사의 역할이 공공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결된 만큼, 프랑스에서는 건축사의 업무대가 선정 방식이 체계적이고 법적으로 명확하게 규제됩니다. 건축사의 역할이 건축물의 품질, 안전,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사회적으로도 건축사는 재능 있는 전문가로 인식되며, 건축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도 높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도시의 중요한 공공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사의 이름이나 약력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습니다. 건축물의 개관식이나 기념식에서도 건축사를 초대해 연설을 부탁하는 등, 건축사에 대한 높은 인식이 건축사의 업무대가 정당성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Q. 프랑스와 한국의 건축사 업무대가 체계에 어떤 차이가 있으며, 이러한 차이가 건축사들의 직업적 지위나 책임감에 어떻게 영향을 미친다고 보십니까?
프랑스와 한국의 건축사 업무대가 체계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세분화된 설계 단계에 따른 업무대가의 차이에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총 8단계로 나뉘어 있으며, 이는 첫 단계부터 최종 준공까지의 모든 과정에 걸쳐 건축적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로 기능합니다. 각 단계별로 업무대가가 명확하게 책정돼 있으며, 각 단계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프랑스에서는 단순히 사업성이나 기능성에만 집중해 설계 기간을 최단 기간으로 줄이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대신, 건축물을 정교하게 설계하고 완성도 높은 최종 결과물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타납니다. 건축 품질에 대한 이러한 집념과 사회적 인정은 건축사의 직업적 위상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건축사에게 중대한 책임감을 부여합니다.
민간 발주에 있어서 프랑스건축사협회(L’Ordre des Architectes)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설계 표준 계약서를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개인 건축주는 건축사와의 계약을 단계적으로 체결할 수 있습니다. 먼저, 현장 방문 및 조언에 대한 계약(Contrat pour visite conseil)을 체결한 후, 전체 건축물 설계에 대한 계약(Contrat d’architecte)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또는, 현장 방문 및 조언에 대한 계약(Contrat pour visite conseil)과 계획설계 계약(Contrat pour réalisation d’esquisse)을 체결한 후, 전체 건축물 설계에 대한 계약(Contrat d’architecte)으로 이어지는 방식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전체 설계 공정 중 일부만을 수행할 경우, 건축사의 업무대가는 전체 공사비의 5∼10%로 책정되며, 모든 설계 공정을 수행할 경우 전체 공사비의 10∼15%로 책정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개인 건축주가 갑작스럽게 계약을 체결하기보다는 건축사와 점진적으로 소통하며 단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또한, 건축사에게는 설계에 앞선 각 단계에서 명확한 역할을 부여하고, 그에 따른 업무대가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공공 발주에 있어서도 프랑스에서는 전체 공사비의 8∼15%로 건축사의 업무대가가 책정되며, 이는 한국보다 높은 요율입니다. 더 나아가, 공사비가 상승할 경우 최종 용역비도 이에 따라 상승하도록 법적으로 규정돼 있습니다. 대가 산정 방식 또한 단순히 공사비 대비 요율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설계의 난이도와 복잡성 요소(예 : 환경의 물리적 제약 및 조화, 건축물의 특성, 계약상 요구사항)에 따라 계수를 정해 곱하는 방식으로 더욱 정교하게 이루어집니다.
Q. 프랑스의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 건축사들이 업무대가 정상화를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시사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경제적인 공사비와 최소화된 공사 기간, 용도의 기능성을 넘어서는 문화를 담아내는 것이 바로 건축이며, 이것이 건축문화입니다. 공공건축물이나 사적인 건축물을 신축할 때, 건축사들은 그 기회를 통해 건축물이 대지와 맺는 맥락, 사용자의 요구, 건축적 용도, 조망과 채광, 그리고 이를 넘어서는 제3의 가치를 담아내려는 전문가입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다른 주체들(발주처, 시공사, 감리자, 협력업체 등)은 주로 경제성, 안정성, 사업성, 효율성의 측면에서 판단하고 사고하지만, 건축사는 공간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기능성, 심미성, 지속가능성, 공간성의 측면을 깊이 있게 고려하며 사고합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에서는 건축사를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자주 비유하곤 합니다. 프랑스의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건축사의 핵심적인 역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수반돼야만 건축사 업무대가의 정상화가 근본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Q. 프랑스의 법적 제도를 참고하여, 건축사 업무대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제도적 지원이나 환경 조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건축물이 완성되기까지는 여러 대안을 검토하고 발전시키며, 장단점을 평가한 후 최선의 결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모든 참여자가 인식해야 합니다. APS에서 APD로, 건축 인허가를 거쳐 PRO와 EXE 단계로 진행되면서 건축물의 구체화와 상세화가 이루어지며, 이에 따른 노력과 시간이 정당하게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 대한 업무대가의 정당성을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졸속으로 진행된 설계 프로젝트는 시공 과정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며, 설계자가 과오의 책임을 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프랑스에서는 PRO 단계에서 도면의 모든 부위를 상세하게 표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한국에서는 허가 후 실시설계를 빠르게 마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발주처가 속도에만 중점을 두는 경우도 자주 발생합니다.
또한, 설계 이후 건설 품질을 관리하는 과정에서도, 시공사의 샵드로잉에 대해 건축사가 승인 또는 수정을 요청하는 VISA 단계처럼, 원설계자가 현장과 체계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업무대가 체계의 개선도 요구됩니다. 속도가 아닌 품질에 집중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건축사의 직업적 위상을 높이고, 업무대가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