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1

- 정지용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린다.
열없이 붙어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백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흔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 ‘정지용 전집’중에서/ 민음사  / 1988년(개정판 2003년)

해방공간에서 정지용은 좌파 문인들이 참여한 <조선문학가동맹>의 중앙집행위원을 지냈다. 그게 빌미가 되어 이승만 정부에서는 보도연맹에 강제 가입 당하여 전향 강연에 끌려 다녔다. 이 시는 1927년이나 1930년쯤에 쓰였고 시의 내용으로 보아 누군가를 잃었던 정황이 분명하다. 그동안 정지용은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그의 이름은 ‘정0용’ 같은 식으로 표기되었지만 2000년 전후로 북에 있는 그의 아들이 남한에 아버지의 생사를 물어 와 그것도 아닌 게 되었다. 이 시를 읽으면 그가 잃었던 누군가가 아니라 그렇게 사라진 그 스스로의 종적을 그린 것 같아 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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