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물치
- 이창수
육이오 참전용사에게만 준다는
빨강 모자 쓴 아버지
복내장에는 큰 가물치가 없다며
보성읍으로 버스 타고 나왔다
가는 곳마다 아버지가 보인다
나는 깊은 물에 사는 가물치
아버지 눈에 띄지 않으려고
사람들 속으로 숨었다
어린애만한 가물치 고아 먹으면
병이 낫겠다는 어머니
큰 병원 의사도 머리 흔드는데
가물치 몇 마리로 되겠어요?
아버지는 병든 어머니 데리고
광주와 화순 순천과 장흥
멀리 서울 큰 병원까지 다녀왔지만
의사들은 고개만 흔들었다
아버지는 오일장마다 가물치 구하러 다니고
나는 아버지 피해 다녔다
- 이창수 시집 ‘횡천’ 중에서/ 문학세계사/ 2022년
이 시에는 아버지-가물치-어머니-나의 미묘한 관계가 단순하지 않게 그러나 선명하게 포착되어 있다. 어머니의 병은 가망이 없지만 아버지는 가물치 몇 마리면 차도가 있을 거라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는 아버지의 미련이 안타깝다. 그래서 아버지를 피하고 싶은 나는 아버지가 구하고 싶어하는 가물치와 같다. 나를 먹으면 어머니의 병이 나을까? 아버지는 나를 푹 고아서 어머니에게 먹이려는 모양이다.
함성호 시인
haamxo@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