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체결 전부터 법률자문 ‘저작권법률지원센터 모델’ 건축사 업계 도입 필요”

2023년 문체부 주도로 ‘저작권법률지원센터’ 설립
계약 체결 전 법률 자문제공으로 불공정 계약 방지 가능

국내 실정에 맞는 표준계약서 개정
건축사들의 안정적, 공정한 업무환경 조성 위해
‘설계비 지급보증제’ 도입 시급

“실시설계도서를 납품한 후에도 골조공사 완료 시 10%, 사용 승인 완료 시 10%의 설계비를 남겨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기도 A건축사는 최근 취재진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건축사들이 불공정 계약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계약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놓여 부당한 요구를 감내하며 일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설계비 분할 지급의 불공정한 비율과 건축주가 부담해야 할 인허가 수수료를 설계비에 포함시키는 등의 부당한 계약 조건으로 인해 재정적 손실을 입고 있는 것이다. 건축사들은 공정한 계약 조건 하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제도 전반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건축사는 “OO건설과 OO산업개발은 자사 규정을 근거로 계약금을 5%만 지급하고, 실시설계도서 납품 이후 20%의 금액을 남겨두도록 강요했다"고 말했다. 공사기간이 4년 이상 소요되는 프로젝트에서는 이로 인한 금전적 손실이 클 수밖에 없다. 대형 건설사들은 설계비 잔금을 남겨두는 이유로 공사 중 현장대응 필요성, 사용 승인 업무, 건축물대장 작성 업무 등을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업무는 설계비와 별도로 책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이유로 잔금을 남겨두는 것이다. 예를 들어, LH의 경우 현장대응 비용이 별도로 책정되어 있으며, 사용 승인 업무는 설계업무가 아닌 시공자의 업무이고, 건축물대장 작성은 시공사가 별도로 발주하는 용역으로 행해져야 한다.

또 다른 사례로, 건축주가 지불해야 하는 인허가 제반 수수료 비용을 설계금액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있다. 건축허가수수료, 국민주택채권, 면허세 외에도 에너지절약계획서 평가수수료, 에너지효율등급인증, 녹색건축인증 등 다양한 수수료가 발생한다. 면허세를 제외한 수수료는 건축주 명의로 지불해야 하지만, 이를 설계자에게 납부를 강요하거나 설계비에 포함시켜 계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설계비를 그만큼 더 주면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건축주 명의로 고지서가 발급되기 때문에 설계자는 비용 처리가 불가하다. 비용 처리가 되지 않으면 고스란히 수익으로 처리돼 세금이 부과된다. 또한, 계약 이행 보증증권, 손해배상 공제증권 등의 비용도 상승하게 된다. 반대로 건축주는 용역비를 지불하며 비용 처리를 하고 수수료 영수증도 챙기게 되어 이중으로 비용 처리가 된다.

해외의 경우, 호주는 불공정 계약 조항을 포함한 계약을 무효화하고, 위반 시 벌금을 부과하는 법적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3년 11월에 개정된 호주 소비자법(Australian Consumer Law, ACL)에 따르면, 표준 계약서에 불공정한 조항이 포함될 경우 법원이 이를 무효화하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이 법은 직원 수 100명 미만 또는 연간 매출이 1천만 호주 달러 미만인 소규모 기업에도 적용돼, 더 많은 기업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건축사협회(AIA)는 표준계약서를 제공해 건축사와 건축주 간의 계약 조건을 명확히 하고, 공정한 계약 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AIA 계약서는 건축 프로젝트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며, 계약 당사자 간의 분쟁을 최소화하고, 법적 분쟁 발생 시 예측 가능한 결과를 보장한다. AIA 계약서는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업계 표준으로 인정받아 많은 프로젝트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현행법(건축법 제15조)에 따라 국토교통부장관의 승인 하에 표준계약서를 마련하고 이를 업계에 보급할 수 있다.

한편, 저작권 분야에서도 불공정 계약 논란이 지속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23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 주도로 한국저작권위원회와 공동으로 저작권법률지원센터가 설립됐다. 처음에는 상근 변호사 2명으로 시작한 센터는 현재 상근 변호사 4명과 행정 지원 2명으로 성장했다. 센터는 개소 후 1년 동안 2300여 명의 신진 예비 창작자와 문화예술인에게 법률 컨설팅을 제공해, 계약 체결 전에 법률 자문을 통해 불공정 계약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저작권 공정계약 체결 지원사업’을 추진해 계약서 작성이 낯선 창작자 또는 기관 및 업체를 대상으로 계약 체결 전 단계부터 법률 자문을 실시하고, 최종적으로 계약서 초안을 완성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를 위해 변호사 26명으로 구성된 ‘저작권법률서비스 지원단’을 46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저작권법률지원센터 모델을 건축사 업계에 도입하면, 건축사들이 계약 체결 전부터 법률 자문을 받아 불공정 계약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건축연구원 김홍수 선임연구위원은 “공정한 계약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한 법적 제도 개선과 더불어, 국내 실정에 맞는 표준 계약서 개정과 설계비 지급보증제 도입이 시급하다”며 “이를 통해 건축사들이 안정적이고 공정한 업무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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